비는 내리고 / 박지영
40일치 물을 한꺼번에 먹어치운 낙원입니다
쌍둥이 동생을 잃어버리고
젖은 채 놀고 있는 운동화 한 짝이 있어요
갇혀버린 방주 갑판 위에 피처럼 피어나던
빨간 흙이 있어요
형광등을 끄면 이곳은 안전한 제국
약에 취한 벌레들이 춤추는 무도장이죠
캄캄한 고요와 먹성 좋은 배수관은 둘도 없는 친구
물을 마시면 소화불량으로 꽥꽥대는 동반자
실 빛이 반라의 창을 통해 기어들어올 때에
도져버린 염증이 파란 잉크자국으로 번져가는
이곳에서
대밭 죽순 자라듯 물의 키는 자라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키가 그대로
비가 내리고
하루 종일 물방울이 후두둑 쌓이고
첫사랑이 내밀던 과즙마냥 비가 실실 내리고
위험한 중독은 키가 성큼 자라고
창을 타고 흘러오는 빗방울 전주곡
햇빛꼬리에 목 마른 쇼팽이 넋을 잃은 곳
자꾸자꾸 비는 자꾸 내리고
그렇게 자꾸 비는 내리고
*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ㅡ제목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