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 미러 / 박지영
온갖 것을 폭식하고 늘어진 고요입니다
천 개의 밑장을 돌리고도
여유 있게 살아나는 편안한 기지개
물고기의 자맥질은 미끼예요
선글라스를 낀 잔물결이 물 밖을 염탐할 때
호수의 얼굴은 순수합니다
지난 밤 폭우에도 끄덕 없는 나무
천만 관객을 모았다는 어느 배우를 닮았어요
억울한 것들을 짚어보자면
가령 지나가다 실족사한 개미, 물 마시다 미끌어진 다람쥐
사랑 때문에 앉아 울던 여자
2억5천만 년 전 알을 낳던 공룡이 바닥에 쭈그려있을지도 몰라요
이끼로 버무려진 초록빛을 따라 안을 들여다보고 싶어지죠
태양빛과 물살이 공조한 평안의 천국이죠
보이는 것에 친절하고 싶었을 때
매끄러운 얼굴이 나를 노렸죠
똑똑한 뇌가 거부했는데 잘난 척 하던 심장이 속삭였죠
사람 좋고 잘 생긴 그 그럴 리 없다고
수줍고 여린 그녀 그럴 리 없다고
직감 좋은 나 그럴 리 없다고
거짓은 톱밥처럼 수북하고 오그라든 진실이 나를 보고 웃었죠
쉿! 매끈한 것을 조심하세요
절규하는 그대에게 귀 기울여도
내 얼굴만 보이는 숙맥 같은 마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