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수행

by 박지영JPY

커피수행 / 박지영


빈속에 마신 그이가 발목을 잡는 아침입니다

돌소금처럼 피어나는 수행자들의 문안인사가

검은 파도가 들썩이면

하루치 인내만큼의 삯을 치르는

어설픈 고행이 시작됩니다


흔들리는 바다를 건너 온 붉은 씨는

볶이다가 갈리다가

젖은 흙이 되어

사막의 열기를 이겨낸 향기로 주위를 둘러보지요


무료한데 전쟁 같은 일상

그 장단이 버거워 던져버리고 싶을 때

참아내라고 꼬드기는 그이는

향수를 많이도 닮았습니다

그이를 맡으면 도인이 됩니다

탁자에 앉아 시계를 외면하게 합니다


때로 들뜨고 싶을 때 차분하게 말 거는 그이

그이는 꼭 땀과 범벅이 되어서 내게 옵니다

갈색의 그이는 나를 만져주는

신을 닮았습니다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도

간혹 밤새 눈이 내리고

눈발이 힐끗거리는 피안의 세상에서도

들볶이고 짓눌려서 얻어낸 따스하고 조용한 품격

​한 조각 일상을 견뎌내게 하는 ​


그이는 나의 추종자

나는 그이의 수행자


우리는 서로를 물들입니다


날마다 신선하게 물들입니다


물들 때까지 견디고 있습니다


사는 일을 늙는 일을 아픈 일을 죽는 일을


그렇게 물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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