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독이 필요한 아침 / 박지영
나는 친절한 사람입니다
말씨는 상냥하고 두 손은 공손하죠
거리를 걷다가 어려운 사람을 만났어요
금세 기죽은 나
그분의 안경은 무척 멋집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렌즈색이 부러워 힐끔대다가
훔쳐버렸습니다
도수가 안 맞아 머리에 이었더니 몸이 자꾸 기울어집니다
물구나무서서 거꾸로 걷는데 아무도 안 봅니다
가슴이 흘러나와도 눈길도 안 줍니다
거미가 아름다운 이유
무채색 투명한 비닐하우스
가로실과 세로실로 짠 그물망 그것은 그물망
가슴에서 나오는 발성법으로 먹고살죠
우리는 어젯밤 한잔 했습니다
알 수 없는 색깔의 품격이 닮고 싶어
공중에 걸린 그물의자에 걸터앉았죠
주거니 받거니 지나가던 날파리 안주 삼아
제우스의 넥타르 한잔 걸쳤습니다
훔쳐온 안경을 꺼내든 건 분명 취기 탓
아름다운 친구가 공중제비를 하더니
제가 쳐놓은 날실에 제가 걸려 바둥거립니다
끈끈한 껌이 다리를 잡고 배를 잡고
머리까지 온통 껌 딱지 투성이
우리는 분명 취했습니다
친절한 나와 아름다운 거미에게 필요한 건
렌즈의 변덕에 관한 해석
해독 주스 두 잔 말아주실 분 연락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