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천국

by 박지영JYP

트라우마 천국 / 박지영


어릴 적 그 아이 살던 동네에 한 아줌마가 있었대

잘난 척 많이 하던 돈 많은 아줌마

걸으면 부풀어 나온 엉덩이가 실룩거려서

별명이 오리궁둥이었다지

돈 빌리러 드나들던 동네사람들이

손바닥을 파리처럼 발발 비비고

침도 안 바른 마른 입에서 속 빈 아부를 쏟아내곤 했대


해가 뉘엿뉘엿 기어가던 어느 가을

골목에서 오리궁둥이랑 딱 마주쳤다지 뭐야

순간 숨이 멈은 듯 하얗게 질린 아이

도망가기엔 이미 늦어버린 어색한 거리

머리 조아리고 죄 많은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는데

안녕하지 못 한 오리궁둥이가 쏘아보더래

두 얼굴의 사나이도 아닌데 슈렉도 아닌데

초록색 얼굴로 초록색 안광을 발사하더래


청동은 녹이 슬면 초록색이지

사람은 독이 슬면 초록색이지


목사님이 그러셨대

부자가 천국 들어가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라고

아홉 살 그 아이는 마음이 놓였대

천국에서 오리궁둥이 만날 일은 없을 테니까

독화살처럼 어린 심장을 쏘아대던 초록색 눈살

안 맞아도 되니까


구원도 모르고 천국도 못 가는 오리궁둥이가 불쌍해서

모든 걸 용서하기로 했대

모든 걸 잊기로 했대

가난한 엄마가 빌리고 제때 갚지 못 한 돈 때문에

오리아줌마가 천국을 갈 수 없으니

미안하고 불쌍해서 눈물이 나더래


몇 년 지나 옛 동네소식을 바람결에 들었다는군

그 이후 아이를 교회에서 더 이상 볼 수 없었다는군

오리궁둥이가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는군

독이 슬어 녹이 슨 초록색 얼굴을 하고

일요일마다 초록색 기도를 한다는군


(내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네가 하나님께 먼저 용서를 받아?)

밀양의 전도연 아줌마는 예쁘고 똑똑했지

그 아이도 예쁘고 똑똑했나 봐

그 아이는 초록색을 싫어했나 봐

상추 깻잎 호박 오이 수박도 싫었대

오리고기는 입에 대지도 않았대


천국의 비밀열쇠 잃어버렸네

초록색 얼굴로 분칠을 한 그 아이

천국문 열릴세라 단단히 망을 보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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