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그의 신발을 신고 1 마일을 걸어보기 전에는 그 사람에 대해 판단하지 말라
- 인디언 속담
젊은 시절 몇 년을 키높이 운동화를 신고 다닌 적이 있다. 세련된 데다가 작은 키를 감쪽같이 감추어 주는 그 운동화가 좋아서 한참을 신고 다녔다. 한동안 키 큰 여자가 되어 사는 기쁨을 누린 대가가 무척 컸다. 나름 작고 예뻤던 발에 변형이 온 것이다. 엄지발가락 옆에서 서서히 뼈가 튀어나오는 고통을 견뎌내던 어느 날 나는 그 운동화를 결국 포기했다. 키를 한 뼘이나 크게 만들어주는 마술이 아쉽고 아까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운동화를 포기하고 키 큰 여자를 포기했지만 그 후유증은 지금도 남아 나를 괴롭힌다. 작은 키로 살든지 뼈가 눌리는 고통을 감수하든지 어차피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둘 다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이제는 새 신발을 선택할 때마다 그전에는 고려하지 않던 새 신발의 발볼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키높이 운동화가 내게 준 후유증이다. 그 시절 키높이 운동화를 신고 다닐 때 어떻게 그 아픔을 참고 다녔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 간다. 그만큼 키높이 운동화는 매력이 있었다. 아마 젊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지금은 몸에 걸치는 그 어떤 것 중에서도 신발이 가장 중요하다. 어디를 가든 발이 불편하면 겁부터 더럭 난다. 누구든 그럴 것이다.
내가 스스로 선택한 내 신발도 이런데 하물며 맞지 않는 남의 신발을 신고 1 마일을 걷는 경험은 어떤 것일까? 1 마일은 약 1.61 km다. 간단한 산책 정도의 거리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는 종종 남의 신발을 신을 때가 있다. 문제는 남의 신발을 신고 1 마일은커녕 몇 걸음 대충 걸어보고 이러쿵저러쿵한다는 것이다. 역지사지라는 말은 남의 신발을 신어보라는 충고다. 하지만 잠시 신어보다가 벗어던져서는 알 수가 없다. 적어도 1 마일쯤은 걸어봐야 한다. 그의 또는 그녀의 신발을 신고 1 마일쯤 걸어보자.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 신기한 경험을 통해 실제 우리가 사는 세상이 변할지 모를 일이다.
오늘 나 자신에게 말해주는 공감의 지혜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