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을 우리는 '현재'라고 부른다
우주는 모든 게 동시에 존재한다. 우리가 지구에서 느끼는 것처럼 시간이 선형적 구조로 존재하지 않으며, 미래는 수많은 가능성의 장으로 열려있다. 여정을 과거-현재-미래 순으로 인식해 세상을 배워가는 우리들의 입장으로서는, 대체 모든 현상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체감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지구는 원인과 결과,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학습하는 장이기 때문이다.
이미 몇몇 과학자들이 시간이라는 게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즉, 환상임을 밝혀냈다. 그렇다면 아이가 성인으로 성장하고, 과일이 썩고, 물건이 낡아지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시간이라는 것이 단지 환상에 불과하다면, 이 모든 물질의 변화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는 지구 안에서 모두가 예외 없이 새파란 하늘을 보며, 두 발을 받쳐주는 단단한 땅을 밟는다. 초록빛의 자연들이 함께 숨 쉬며, 다양한 색의 꽃들과 살아가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건물과 다양한 기술들을 창조해 가는 현대 사회에서도, 이러한 지구의 본래 배경이자 본질은 바꿀 수 없다. 모두가 이 행성의 공통된 현실과 필터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 법칙은 아무리 과학이나 기술이 발달하더라도 바꿀 수 없는 지구의 의식 그 자체다. 땅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땅이 될 수 없듯이, 기본 원칙인 셈이다.
지구 내 물리 법칙 아래, 사람은 성장하고 노화하며, 과일은 썩고, 중력은 아래로 작용한다. 이 모든 변화이자 설정값은 이 순간에도 이미 존재하는 흐름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에 따른 변화는 마치 '슬로우모션 영상'을 보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동영상은 원인과 결과가 이미 존재하지만, 시청하는 과정에 있는 우리는 그 모든 사실을 앎에도 기꺼이 '과정이라는 변화'에 몰입한다. 그 영상은 과거-현재-미래라는 세 분기점으로 나눠진 조각난 작품이 아니라, 하나의 영상일 뿐이다. 우리는 마우스 휠 하나로 영상의 앞 장면도, 끝 장면도 오갈 수 있다. 그 모든 장면은 동시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가 이미 존재한다면,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는 "그렇다"고 과감히 답하겠다. 그러나, 현재 본인의 '주파수'에 맞는 흐름이 존재하는 원리다. 오로지 하나의 확정된 장면만이 미래로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가 진동하고 있는 흐름에 따른 가장 선명한 선택지가 '이미 존재하는 것'이다. 미래는 하나로만 정해진 단일한 운명이 아니다. 가능성의 장이다.
그림자가 가장 뚜렷하고, 양극성이 극명한 3차원의 밀도에서 조금씩 확장되게 되면, 선형적 시간 구조에서 서서히 자유로워지게 된다. 과거의 나, 미래의 내가 동시에 존재하는 감각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나라는 고유성이 뚜렷해지는 느낌이다.
과거의 나는 내 안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기억이 아닌, 파동으로 남아있다. 그 모든 여정은 우리의 기록이자 정보다. 단지 지나간 기억으로 그리워하거나 혹은 외면하는 게 아닌, 내 안에 존재하는 모든 나를 인정하고 하나로 통합할 때, 비로소 나는 내가 된다. 내면의 별이 된 모든 진동들은 이 순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의식으로서 존재하고 있다.
그렇게 통합된 본인의 파동대에 가장 가까운 현상은, 이미 미래로서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그 과정속에서 '현재'라는 우주의 동시성의 감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라는 환상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건 어렵지만, 모두가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힘이기도 하다.
내 안의 모든 나를 품어주고 존재하는 것, 현재를 온전히 느끼는 것, 작은 것을 대할 때나 행할 때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 것. 그러면 감사할 만한 일상이 주어지는 과정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걸 우리는 지금 이 순간, 미래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