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살아가지 않고 창조할 때,

당신은 몇차원에서 살고 있나요?

by 본담

그대가 사과를 먹는다. 그 과정의 시작을 묻는다면, 여러분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냉장고를 열어 사과를 꺼낸 후, 잘 씻어서 칼로 껍질을 벗겨 먹었습니다."


틀린 답은 아니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본질이 빠진 답이다. 우리는 사과를 먹기 전, 의식 속에서 사과의 향기로운 향과 아삭한 식감, 달콤한 과즙과 새빨간 형상을 떠올린 후 그러한 행동을 취했기 때문이다. 결국 현실에 사과를 끌어온 근본적인 장소는 의식 세계였다.




창조자의 원리를 그대로 담고 있는 우리는, 자기 자신이 현실을 창조해 나가는 신성을 보유한 존재임을 잊고 살아간다. 어디로든 갈 수 있고, 원하는 모든 것을 현실로 끌어올 수 있으며, 그 뿌리는 3차원 이상의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기본적인 원리를 알지 못한 채 지내고 있다.


차원은 단순히 공간이나 형태가 아니다. 1차원의 세계는 점이고, 2차원의 세계는 평면이며, 3차원의 세계는 높이만이 추가된 공간이 아니라, 그렇게 인식하는 의식의 수준에 따라 그 차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지구라는 3차원 물질 세상의 공통된 현실 속 살아가는 생명체들이라도, 모두가 같은 차원에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니다.


이 세계 속에서 본인의 고유성을 버리고 집단 속에서만 존재의 의미를 찾는 이들은, 마치 개미와 같이 개별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2차원적 감각으로 살아간다고 볼 수 있다. 타인을 처치해야 할 적으로만 여기고, 그로 인해 본인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1차원의 바이러스나 미생물 등과 같은 차원에서 사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러한 비유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비하하려는 의도로 표현된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그런 의식 성장의 과정을 거쳐, 그들의 차원을 내려다볼 수 있는 세상에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겪는 과정이다. 새로운 차원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연스레 하위 차원의 경험을 체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가 지구라는 물질적 이원성의 세상으로 들어온 이유이자, 이곳에서의 체험을 통해 더욱 고차원적인 존재로 도약하기 위함이다.




지난 과거 중 현재 돌이켜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어리석었는지 후회하는 지점이 있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너무 힘들고 감정이 폭발하여 그로 인해 나 자신과 타자에게 상처 주던 날들.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절대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 텐데...'하고 자책하던 순간들.


그 이유는 그대가 과거의 자신과 다른 차원에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유 없는 고통과 아픔, 슬픔은 없다. 그 모든 과정을 통해 비로소 더 높은 차원에서 살게 되었기 때문에.


의식 차원이 달라지면 동일한 현상을 겪어도 다른 감정을 겪게 된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러므로 고난의 순간이 왔을 때, 자아와 하나가 되어 온전히 고통을 느끼기보다는, 그 현상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나에게 주어진 과제가 무엇인지, 이 안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부터 고민하는 게 내 자신을 위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더 높은 차원에서 살게 된다는 건,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가 행복해질 수 있는 지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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