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솜뭉치가 가르쳐준 우주의 시선

두려움이 만든 판단, 사랑이 만든 이해

by 본담


하얀 털의 까맣고 투명한 눈코입을 가진 우리 집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집에 돌아올 때면, 나는 매번 녹초가 되어있었다. 내가 생각한 최적의 코스로 얘를 데려가고 싶은데, 이 작은 아이의 세상에는 그 길이 별로 궁금하지 않았나 보다. 주인이 세운 기준의 코스를 거부하고 굳이 그와 반대되는 길의 냄새를 맡으며 돌아가는 이 녀석과 혼자만의 싸움을 했다. 줄을 약하게 잡아당겨도 보고, 번쩍 안아 올려서 본래 가려고 했던 길로 향해도 잠시뿐이었다.


작은 아이와 의미 없는 싸움에 지쳐갔던 나는, 어느 날 문득 '이 아이가 향하는 길로 가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이 작은 머릿속에, 반짝이는 눈에, 세상을 알아가는 코에, 어떤 이끌림이 있는지 궁금해졌다. 이 작은 생명체는 내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로 과감하게 나를 끌고 갔다. 그 과정에서 집과 너무 멀어지는 게 아닌가 싶어 당장이라도 얘를 안아 들고 익숙한 방향으로 향하고 싶어졌다. 그 순간, 즐겁다는 듯, 넌 어떠냐는 듯, 분홍색의 혀를 내밀고 입꼬리를 쭉 올려 나를 쳐다보는 그 눈동자에, 흰 솜뭉치가 가고 있는 방향으로 묵묵히 발걸음을 함께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집 강아지가 앞장서 보여줬던 새로운 세상은 아름다웠다. 작은 마을에서 작은 아이들이 손에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비속어 없이 웃음을 베풀고 있었다. 군데군데 자리 잡고 있는 작은 놀이터와 작은 공원들은 그 아이들의 세상이 되어주었다. 핸드폰도 하지 않고 서로의 우주를 공유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웃으며, 우리 집 강아지 또한 유유히 그 속을 걸어갔다. 더는 나는 줄을 당기지도, 그 애를 안아 들지도 않았다. 그저, 그 발걸음이 향하는 풍경을 묵묵히 인식할 뿐이었다. 집이 멀어지고 있고, 내가 생각한 길이 아니라는 두려움은 온데간데없었다. 판단을 멈추고 현상에 집중한 순간이었다.




이분법과 양극성의 법칙으로 배워가는 세상에 살아가면서도, 우리는 사랑의 반대말을 쉽게 정의하지 못한다. 대개 증오나 혐오, 또는 무관심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틀린 표현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사랑의 반대말은 '두려움'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증오, 혐오, 심지어는 무관심조차 아주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꼭 두려움이 있기 마련이다. 그 낮고 거친 진동이 우리를 주저하게 한다. 경계하게 하고 외면하게 한다. 본인을 지키기 위함이라는 합리화를 유도한다. 우리가 세상을 배워가는 데 망설이게 한다.

우주는 그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파동들이자 우리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외면하지 않는다. 그저, 본인의 일부분으로 통합해 품고 있을 뿐이다. 우리를 인지하되, 판단하지 않는다. 모든 진동이 곧 본인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우주의 일부이자 우주 그 자체인 우리들은 되려 근원과 반대로 행동하며 살아간다. 우리는 매 순간 판단한다. 본인의 다른 모습일 뿐인 서로를 보면서 "저 사람은 웃음이 많아서 별로야", "저 사람은 어둡고 말이 없어서 꺼려져" 등, 다양한 이유로 마음속에서 판단을 내린다. 그 결과, 분리와 경계의 진동을 창조하게 된다.




특정인이나 특정 상황에 느껴지는 내면의 기류를 '인지하되 판단하지 않는 것.' 그 법칙이야말로 우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문이다. 물론 쉽지 않은 여정이다. 우리는 매 순간 정의하고 판단하는 게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절대로 어렵지 않다. 본인의 두려움을 자극하는 진동을 만났다면, 그 진동에 대한 인지와 판단 두 가지가 한꺼번에 떠오를 것이다. 거기서 판단을 지우면 된다. 그러면 인지만 남는다.


그렇게 되면, 그 대상에 대한 혐오나 경계, 두려움은 사라지게 되고, 그 대상이 띄고 있는 진동의 패턴과 느낌만 보이게 된다. 그럼 자연스레 이런 생각이 든다. '아, 저 사람은 저런 파동체로 살아가고 있구나. 저 진동 또한 우주의 일부이자, 나의 다른 모습이자, 내가 지나온 여정이구나.'


두려움과 공포의 파동에 학습되어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이 세상이 본래 얼마나 아름답고, 각자의 소우주들이 모여 창조해 낸 경이로운 행성인지 잊고 살아간다. 존재하는 모든 영혼은, 존재만으로 우주를 숨 쉬게 한다. 가치 없는 영혼은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진동들이 모여 만들어낸 이곳에서, 서로를 우주의 시선으로 바라봐준다면, 분명 이곳은 좀 더 다정한 세계가 될 것이다. 나는 그 시선을 작고 여린 흰 솜뭉치의 우주 속에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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