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설계자에게

참나를 마주할 때, 비로소 이해되는 것들

by 본담

많은 영혼들이 정보의 확장을 위해 지구로 자진해서 입장하지만, 바로 들어올 수 있는 건 아니다. 고차원의 우리는 모두 하나의 선으로 연결돼 있으며, 서로의 확장을 위해 끊임없이 교류하고 기여한다. 지구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마치 '계약'을 성립하는 것과 비슷하다. "난 너의 성장을 위해 이 역할을 맡을 테니, 넌 나에게 이런 깨달음을 줘"라는 식의 합동 시나리오를 제작하는 셈이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서로에게 특정 역할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모두 설계해서 지구로 들어온다. 본인이 충족하고 싶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조건 없는 사랑을 경험하고 싶은 영혼은, '장애아의 부모'를 자진해서 택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지구적 관점에서는 비극이자 고통이지만, 영혼의 관점에서는 큰 성장 과제 중 하나로 정의한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성장하게 된 영혼은, 다음 생에 '타인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받는 흐름'으로 설계된다. 이러한 균형의 원리를 지구에서는 '카르마'라고 부른다.


상위 차원에서 큰 틀을 설계한다고 해서, 자아(ego/지구에서 생활하는 우리의 하위 차원 의식체)의 자유 의지가 없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지구는 '망각의 장'. 오히려 자아의 자유 의지를 통해 경험을 체화해 간다. 영혼은 기본적인 주파수 세팅(설계)만 할 뿐, 나머지는 모두 자아의 영역이다. 영혼은 절대로 자아의 자유 의지에 함부로 개입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나를 이렇게 설계한 영혼이라는 작자에게 묻고 싶을 것이다. "당신은 왜 나를 고통 속에 빠뜨렸나요?" 그럼 당신의 영혼은 답할 것이다. "네가 널 위해 선택한 길이다"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온전히 망각하고, 두려움을 용기와 사랑, 그리고 희망이라는 파동으로 정제해 지구라는 행성으로 온 그대들은 '확장과 성장'을 위해 이 여정을 택했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그 경험치들은 '고통, 분리, 경계, 의심, 두려움'에서 창조된다. 그것이 바로 지구라는 행성에서 우리 모두가 '서로를 타인으로 여기는' 근본적 이유다. 진정한 사랑, 즉 통합의 여정은 이러한 극단적인 양극성에서 창조된다. 그리고 이러한 모순점을 뚫고 진정한 사랑의 본질에 도달하는 것이야말로, 우주 그 어디에서도 얻기 힘든 귀중한 값어치가 된다.


영혼과 소통하는 법은 어렵지 않다. 당신의 에너지를 '외부'가 아닌, '내면'으로 끌어당기면 된다. 대표적인 방법으로는 명상이 있다. 우리는 뇌의 뉴런 신호 및 여러 신경망을 통해 물질세계를 탐구한다. 아주 직설적으로 말이다. 그 감각은 너무나도 명확하고 짜릿하기에, 우리는 우리의 본질을 쉽게 잊는다. 이것이 결코 어리석다고 할 수는 없다. 애초에 우리가 지구라는 행성 안에서 완벽히 각자의 역할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망각이 필연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이전 생의 모든 기억을 가지고 지구에 진입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게 되면 인간은 지구라는 별이 본인들의 고향별이 아님을 인지하고, 자신의 모든 여정 또한 미리 알게 된다. 현재 내 배우자가 과거에 나를 가장 아프게 했던 사람이었으며, 작고 여린 내 손주가 나의 스승이었던 시절을 마주하게 된다. 어떻게 원활하게 구조가 돌아갈 수 있겠는가? 뿌리를 땅속 깊숙이 내리지 않는 식물이 어떻게 꽃과 열매를 피울 수 있겠는가? 본인의 모든 생애 과정을 미리 알고 있는 자가, 어떻게 이 연극에 진실로써 몰입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보이는 것이 진실이자 전부'라고 믿게 된다.




내면에 집중하라. 늘 피어오르는 질문을 외면하지 마라. 어떻게든 그 질문에 답을 해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라. 우리의 내면은 텅 빈 공허가 아니다. 우주 그 자체다. 우리가 이생에서 겪은 모든 기억은 우리의 내면 속 별이자, 행성이자, 위성이 되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안에서 살아 숨 쉬며, 스스로의 궤도를 따라 회전하고 있다.


그렇게 내면의 우주를 마주하게 되면, 직관이 열린다. 언어가 아닌 파동을 느끼게 된다. 자연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게 되고, 동물들의 깊은 감정을 인지할 수 있게 된다. 누군가의 눈을 보면, 그 사람이 가진 과거의 상처가 전해진다. 특정 공간에 가면, 그 공간의 에너지가 스며든다. 사회가 정해놓은 통제와 지배의 기준이 아닌, 진짜 내 영혼이 추구하는 길을 찾을 수 있게 된다. 그때 스스로는 느낀다. "이 길이 내 길이었구나. 내가 설계한 여정이었구나. 이 순간을 위해 그토록 여태껏 헤맸었구나" 하고.


고차원에 존재하는 진짜 '나'를 만나는 통로는 '감각'이 아닌, '자각'임을 아는 자만이 진실의 세계에 눈을 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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