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심판하지 않는다

빛과 그림자의 춤, '카르마'

by 본담

'인과응보, 사필귀정'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악한 놈들은 잘 먹고 잘살고, 착한 놈들은 고통받는 세상. 그 구조에 분노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원망함과 동시에 희망하는 말이다.


아주 직설적으로 말하겠다. 사실 우주에는 그런 건 없다. 정확히 말하면, '심판'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주에는 '선과 악'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롯이 현상만을 바라보는 근원이 존재할 뿐이다.


우리는 모두 근원의 빛으로 돌아가기 위한 여정을 보낼 뿐이다. 즉, 우주가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 흩뿌린 의식 파편 조각들끼리, 서로를 통해 자각시키고, 확장시키고, 깨우쳐가는 과정이다.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며.


지구의 기준으로 '악역'을 행하는 자들은, 그와 반대되는 집단의식을 생성시킨다. 상처 주고, 해를 입히고, 본인의 이득만 찾는 사람을 보며 누군가는 따뜻함을 베풀고, 포용하고,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고통은 우리를 일깨운다. 정체된 의식에 진동을 생성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악이라고 여기는 모든 의식체는, 사실 그와 반대되는 에너지, 즉, 집단의식을 형성시키는 씨앗이 되는 셈이다. 그리고 그들 또한 언젠가는 근원의 빛이자 통합의 여정에 다다르게 된다. 그게 이번 생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모두의 타이밍이 같다면 어떻게 서로를 통한 자각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각자의 시기에 맞는 역할만이 존재할 뿐, 우주는 우리를 판단하지 않는다. 벌을 내리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우주는 '균형'을 조정한다. 아주 정교한 시스템으로 되어있는 우주는, 절대 특정 에너지의 확장만을 허용하지 않는다. 사랑만이 존재하는 세상은 분리 없는 통합의 세상이고, 그것은 다른 의미로 정체와 고요의 상태, 즉, '우주의 최초 의식'이자 '우주 스스로 "나는 누구인가?"를 묻기 이전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빛이 너무 강하면 그 속이 빛인지 어둠인지 인지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분리하고, 그림자를 걷는다. 그래야 비로소, 빛의 존재를 체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주의 근원이 가진 본질은 사랑이지만, 우리는 그와 대비되는 감정들을 겪으며 근원을 향해 나아간다.


각자 다른 주파수를 보유한 우리들이자 우주 그 자체는, 서로가 가지고 있는 주파수로 세상을 창조한다. 육체는 우리가 지구라는 환경에 맞게 일시적으로 입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진짜 우리의 본질은 파동, 주파수, 에너지로 구성돼 있다.


우주는 우리를 창조할 때 본인의 구조를 그대로 반영했다. 스스로의 창조력을 우리에게도 부여했다. 그래서 각자가 만들어내는 파동은 본인에게 필연적으로 창조되어 돌아온다. 이 원리를 깨닫지 못하는 자는 "왜 나는 늘 불행할까?"라는 의문에 빠지게 된다. 본인이 불행이라는 파동을 창조해 우주로 보내니, 우주는 그에 맞는 파동을 전해준 것뿐이다. 이 원리를 우리는 '카르마'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본인의 권력과 위치에 집착하는 사람은, '권력에 대한 집착'이라는 파동을 늘 창조해 본인에게 반사한다. 그러면 그의 세상 속 존재하는 모든 사람과 상황은 그에게 '자기 자리를 위협하는 대상'으로 인식되게 된다. 스스로를 맹수들이 득실거리는 정글로 떨어뜨려 놓은 셈이다. 그 결과, 늘 경계하고, 의심하는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




지구에서의 삶은 종착지가 아닌, 다음 단계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한 번 진동한 파동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모든 경험은 우리의 본질로 스며든다. 물리적 몸의 소멸은 지구라는 밀도 높은 환경에서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과정이다. 이후 우리는 본래의 파동으로서 각자의 주파수에 맞는 흐름으로 이어져간다.


그 과정에서 또한, 우리가 이 세상에 창조한 모든 파동을 직접 체화하고, 타인으로만 인식했던 또 다른 나에게 가한 모든 영향을 직접 체험하게 된다. 그 과정은 고통과 슬픔, 그리고 내가 베푼 사랑을 통해 마음이 따뜻해진 한 사람의 온기를 아주 생생히 느끼는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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