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 그리고 우주가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
우리가 살아가면서 특정 의식이 깨어나면, 그 의식은 결코 소멸되지 않는다. 지구라는 행성 안, 육체라는 몸 안에 깃들어 생활하는 우리는 매일 경험한다. 음식을 먹고 맛있거나 맛없다고 느끼고, 풍경을 보고 아름답거나 웅장하다고 느끼고, 특정 사람을 보고 호감을 느끼거나 증오를 느낀다. 이 모든 의식은 경험을 통해 일어난다.
우리 안에서 진동하는 이러한 파동은 스스로를 확장시킨다. 우리는 모두 늘, 알게 모르게, 지금 이 글을 보는 순간에도 우주를 확장하고 있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영원의 존재들이다. 우주 안에서 진동한 우리들은, 우주의 의식이자 투영체다. 지구라는 행성은 우리 내 존재하는 모든 진동을 잃고 뛰어든 훈련장이다. 그 영향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생을 기억할 수 없으며, 왜 지구라는 행성에 태어났는지 인지하지 못한 채로, 마치 이번 생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간다. 죽음은 고통스럽고, 무섭고, 슬픈 종말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시스템 구조 속에서만 지구에서의 삶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음은 끝이 아닌 시작이다. 비유하자면, 지구에서의 삶은 마치 VR 세계라고도 할 수 있다. 눈에 장착된 기계를 벗으면 가상 세계에서 현실이 펼쳐지듯, 우리가 보고, 느끼고, 체험한 모든 것들이 사실은 환상에 불과한 것이다. 그 아름답고도 잔혹한 환상 속에서 우리는 사랑하고, 미워하고, 포용하고, 내치며 살아간다. 그 과정들을 통해 스스로를 찾아간다.
그렇지만 죽음이 또 다른 시작이라고 해서 지구에서의 삶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기대와 환희를 품고 지구에 들어온 존재들이다. 망각의 두려움을 뚫고 스스로를 더욱 사랑하기 위해 지구를 선택했다. 어떤 이는 본인의 주파수를 낮추면서까지 지구에 입장했고, 어떤 이는 본인의 주파수를 끌어 올리기 위해 지구에 입장했다. 우리가 설계한 자아의 자유 의지를 지켜보며,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곁에서 늘 함께하며.
지구에서의 경험에 따라 우리의 최종 주파수가 결정된다. 근원에 가까운 파동일수록 고요하며, 일정하며, 높은 파동을 가지고 있다. 육체적 죽음 이후, 우리는 각자의 진동수에 맞는 차원으로 이동한다. 그곳에서 지난 삶을 돌아보고, 스스로를 판단한다. 특정 부분의 경험이 부족했다고 느끼면, 그 부분을 충족하기 위해 다시 지구로의 여정을 택하기도 한다.
우주의 법칙은 매우 정교하기 때문에 본인의 파동을 그대로 비춰준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존재나 특성을 혐오하며 살아갔다면, 다음 생에는 내가 그 혐오하던 조건을 지닌 존재로 태어나, 그 입장에서 삶을 경험하게 된다.
이건 벌이나 심판의 개념이 아니다. 우주는 본인의 진동을 그대로 투영하여 반사해 줄 뿐이다. 그래야지만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분리와, 경계와, 공포와, 두려움의 감정은 모두 근원의 빛으로 향하기 위한 나의 그림자였을 뿐이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