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하루도 있다
최근에 나는 살면서 가장 어른인 척 살고 있다. 누군가 나에게 인생의 목표를 물을 때면 더 나은 사람,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나는 더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다.
어릴 때, 엄마는 나에게 이기적으로 살아야한다고 가르치셨다. 엄마는 내가 남을 배려하다가 손해를 자주 봤던 일들을 기억하실 것이다. 물론 당신의 딸이 더 잘 살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이 가르침의 출처는 엄마 뿐이 아니었다. 대학에서 만난 언니들도, 학교에 발령받아 함께 일하는 선배들도 나에게 적당히 이기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함께 일하는 것이 좋고, 내가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것이 좋다. 나는 그 일들이 버겁지 않고, 그들은 내 도움으로 인해 한결 편안하다. 결국 나는 내가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남을 돕는 걸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일들 속에서 내가 기분이 상하는 일도 종종 생긴다. 엄마 말대로 정말 내가 손해를 보기도 하고, 내 도움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무례한 사람들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더 열심히 덜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아이들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반대로 큰 단점이 되기도 하는데, 사실 잘 몰랐다가 요즘은 저 단점이 날 많이 아프게한다. 어쨌든, 나는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인건 분명하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처럼 살아도 잘 살 수 있다'는 걸 가르치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 엄마가 나에게 말해주던 것처럼, 이기적으로 살아야 내가 편안하고 배부르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남을 배려하고 도와주며 살아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는 어른의 표본이 되고 싶다.
오징어 게임이 썩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기훈이가 게임 중에 자꾸 다른 사람을 도와주려고 하자 상우가 기훈이에게 욕을 하는 장면이 있다. 극 중 게임 상황은 극단적인 경우이긴 하지만, 나는 상우보다는 기훈이가 더 많은 세상이었으면 한다. 그냥저냥 살아도 숨 막히는 세상에 편안한 숨구멍은 터주어야 하지 않을까.
대학 시절 그리고 지금도 나와 가장 친한 친구인 공실이가 써줬던 편지가 있다. 공실이는 이 편지 내용을 이제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는 너 같은 애를 처음 봤어'라고 적혀있었다. 대충 기억해보면, 너처럼 다른 사람을 즐겁게, 이유없이 도와주는 사람은 처음 봤다는 내용이었다. 공실이가 날 기분 좋게 하기 위해 적은 다정한 문장이었을 수도 있지만 편지를 받은 이후 저 문장은 내 마음 속에 자리 잡았다.
우리 반 아이들은 화가 많다. 얼마나 많냐면 한 달에 한 번 정도 금요일이 7교시인 날이 있는데, 7교시이면 아침부터 화를 낸다. 며칠 전 종례 시간에 가방을 챙기고 반장이 인사를 하려는데, 한 친구가 가방을 늦게 싸서 반장의 '차렷' 소리를 멈추게 했다. 모두 그 아이를 쳐다보고 짜증을 내려던 순간, '그럴 수도 있어! 괜찮아~'라는 말이 들려왔다. 사실 누가 저 말을 했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눈물이 날 뻔했다. 저 한마디에 반 아이들은 모두 수긍하고 웃으며 기다려줬다.
아직 나도 한없이 부족한 사람이지만 나를 보는 아이들 또한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오늘도 열심히 살았다. 내가 좋아하는 가사처럼 아주 조금씩 우리는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