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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무 Nov 05. 2022

찰랑찰랑한 컵 속의 물처럼

내가 담을 수 있는 만큼

물이 담긴 컵에 조금씩 물을  따르면 찰랑찰랑 넘칠 듯 말듯하다.  모금 마셔 물이 넘치지 않게  수도 있다. 때로는 원하든 그렇지 않든 찰랑찰랑한 컵에 물을  따라버리는 날도 있다.


컵에 물이 가득 차도 바로 넘치지는 않는데, 이것은 물의 표면장력 때문이다.  분자 사이에 결합이 생겨 표면적을 줄이는 방법으로 둥글게 모여 넘치는 것을 막아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물이 너무 많아지면  분자 사이에 잡고 있던 결합이 끊어진다. 넘쳐버린다. ​


요즘 스트레스가 제어가 되지 않았다. 권태로워진 업무 때문인지, 나와는 다른 가치관을 지닌 동료들 때문인지, 아니면 엄마 때문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학교 일을 하면서 잘 웃고 넘기는 편이라 생각했지만 가까운 사람들에게 내 짜증을 쏟아내고 있었다. 나를 보고 짝꿍은 내가 물이 넘치기 직전의 찰랑찰랑한 컵 같다고 했다.


이대로 있으면 찰랑찰랑한 내가  흘러넘쳐버릴  같았다. 그러려니 하던 작은 일들에도 참지 못하고 터뜨릴 것만 같았다. 원래  모습은 그렇지 않기에 그게 너무 싫었다. ​오히려 찰랑찰랑하다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옛날에 읽은 책에서  감정을 알아채는 것만으로도 우리 뇌가 대응을 한다더니 진짜인가 싶었다.

컵에 여유가 많을 때는 베풀기도 하고, 실수도 웃어넘기며, 기꺼이 내가 양보하리라 하는 게 사람 마음이다. 나는 항상 컵에 빈 공간이 많은 줄 알았는데 조금의 물방울도 허용되지 않는 상태가 두려웠다. 얼른 컵에 물을 덜어내지 않고는 견디기 어려웠다.

몇 주 정도 찰랑찰랑한 상태에서 물을 조금 따라내는 연습을 했다. 지금의 나는 물이 넘칠 것 같지도 않은, 그렇다고 해서 물이 없는 것도 아닌 컵이 되었다. 이제 보인다. 주변 사람들이 지금 물이 넘칠 것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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