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담을 수 있는 만큼
물이 담긴 컵에 조금씩 물을 더 따르면 찰랑찰랑 넘칠 듯 말듯하다. 한 모금 마셔 물이 넘치지 않게 할 수도 있다. 때로는 원하든 그렇지 않든 찰랑찰랑한 컵에 물을 더 따라버리는 날도 있다.
컵에 물이 가득 차도 바로 넘치지는 않는데, 이것은 물의 표면장력 때문이다. 물 분자 사이에 결합이 생겨 표면적을 줄이는 방법으로 둥글게 모여 넘치는 것을 막아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물이 너무 많아지면 물 분자 사이에 잡고 있던 결합이 끊어진다. 넘쳐버린다.
요즘 스트레스가 제어가 되지 않았다. 권태로워진 업무 때문인지, 나와는 다른 가치관을 지닌 동료들 때문인지, 아니면 엄마 때문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학교 일을 하면서 잘 웃고 넘기는 편이라 생각했지만 가까운 사람들에게 내 짜증을 쏟아내고 있었다. 나를 보고 짝꿍은 내가 물이 넘치기 직전의 찰랑찰랑한 컵 같다고 했다.
이대로 있으면 찰랑찰랑한 내가 곧 흘러넘쳐버릴 것 같았다. 그러려니 하던 작은 일들에도 참지 못하고 터뜨릴 것만 같았다. 원래 내 모습은 그렇지 않기에 그게 너무 싫었다. 오히려 찰랑찰랑하다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옛날에 읽은 책에서 내 감정을 알아채는 것만으로도 우리 뇌가 대응을 한다더니 진짜인가 싶었다.
컵에 여유가 많을 때는 베풀기도 하고, 실수도 웃어넘기며, 기꺼이 내가 양보하리라 하는 게 사람 마음이다. 나는 항상 컵에 빈 공간이 많은 줄 알았는데 조금의 물방울도 허용되지 않는 상태가 두려웠다. 얼른 컵에 물을 덜어내지 않고는 견디기 어려웠다.
몇 주 정도 찰랑찰랑한 상태에서 물을 조금 따라내는 연습을 했다. 지금의 나는 물이 넘칠 것 같지도 않은, 그렇다고 해서 물이 없는 것도 아닌 컵이 되었다. 이제 보인다. 주변 사람들이 지금 물이 넘칠 것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