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기억(첫 번째)

피아노의 기억

by Grace k

밴쿠버도 오늘(7.10 시점)은 한낮 더위 30도를 찍었다.
선풍기 바람이 후덥 하고,
에어컨을 틀라치면 전기세 폭탄이 신경 쓰이는
한여름 날씨다.
한국, 옆 나라 일본, 먼 나라 유럽의 스페인
포르투갈의 폭염에 비할 바 아니라
못 견딘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열대야가 없기도 하니 충분히 견딜만한데
뭘 해도 집중도가 떨어진다.
누워서 책을 보다가 등이 더워져 뒤척인다.
식탁 의자에 앉고 보니 저녁시간이 넘었다.
만사가 귀찮은 때, 최고의 한 끼
비빔면에 삶은 계란 반쪽이다.
껍질 까는 소리에 축지법 쓴 무협소년처럼
루이는 내 옆에 와 있다.
"그래,
무더위에 단백질 보충은 조금 더 해 둬야지."
반쪽은 우리 집 귀염둥이 몫이다.
먹고 바로 누울 수는 없는 노릇이고,
책을 읽기도 주저하면서 오랜만에
먼지 쌓인 피아노 뚜껑을 연다.
취미로나마 피아노를 칠 수 있게 된 건
교육에 꽤나 열심이셨던 엄마 덕분이었다.
아주 어린 내 유년 시절의 기억을 길어 올려본다.


반백 년 전 그 시절, 엄마는
장녀를 유치원에 보내셨다.
피아노도 그때 배우게 되었다.
비교적 소질을 보인 나의 진도는 속도감을 냈다
그러나, 한껏 뻗어도 한 옥타브에 안 닿는
오종종한 손가락이 그 이상의 건반을 눌러야 하니
싫증도 나고 어려워졌다.
꾸역꾸역 다니던 피아노학원은
국민학교 저학년 때도 이어졌다.
쏟아지는 졸음에 머리도 방아를 찧을 듯하니,
선생님이 내 긴 머리끝을 잡아서 강제 고정시켜 준
기억이 아직도 선연하다.
그렇게 '바이엘 상. 하'권을 마쳤다.
그리고 하농, 소나티네, 브루크밀러, 체르니 30번
뭐 이런 외국어 발음의 악보책을
몇 권씩 가지고 연습을 했다.
이 년쯤 이어지고 결국은 난이도가
높아지고 연습량이 많아지자 고비를 못 넘어선 나는 피아노를 미련 없이 포기했다.
의외로 피아노와 운명적으로 만난 이는
내 여동생이었고, 꾸준함과 실력으로 전공자로의 길을 걸었다.
이후 이민 와서 중고 피아노를 샀다.
집 근처에 적당한 매물로 나와있던 그것은
우리 집 피아노와 똑같은 것이었다.
기분이 묘했다.
건반을 눌러보니 연식이 되어 보여도
소리가 울림이 있고 좋았다.
그렇게 집 나간 아이가 돌아온 것 마냥
반갑게 중고 피아노를 들이고
잊었던 건반과 재회하게 되었다.
어릴 적 기억은 참 묘했다.
몇십 년을 잊고 있었는데 연습을 시작하자
악보가 눈에 들어왔다.
찬송가에 평이한 뉴에이지 곡들을 쳐 본다.
신기한 건 어릴 적 학습하던 곡들은
뇌리에 각인되어 악보 없이 웬만큼은
쳐진다는 것이었다.
레코드 가게에 가서 삼백 원을 주고 샀던
'아드리노를 위한 발라드'같은 곡들이다.
추억은 기억이 되어 남았다.
현재가 그것을 재현해 준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
함께 갈 벗이 되어주니 덜 외롭다.
"추억 속 기억아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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