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을 다닐 때의 가장 선명한 기억은
'통증'이었다.
편도선이 붓는 날이 많았다
그 아픔은, 피아노를 치면서 졸았던
그것보단 더 강렬한 기억이다.
침을 삼킬 수가 없을만치 아프고 고열을 동반했다.
중이염에 걸린 적도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항생제 처방을 받아
독한 약으로 아픔을 삭였다
그런데 그 횟수가 잦으니
엄마는 큰 결심을 하신다
'편도선 수술'
겨우 일곱 살이었다.
수술에 필요한 검사는,
일곱 살 어린아이에게 전신마취는
무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수술 전날 밤,
아빠가 내게 종이돈 이천 원을
꼭 쥐어주셨다.
수술 잘 받으면 일주일 동안
아이스크림만 먹을 수 있다고.
그 당시 국민 아이스크림인 투게더가 대용량으로 몇 백 원 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대금을 손에 쥐고 수술실로 들어가는 마음은 수술 후의 아이스크림 먹는 일에 온통 신경이 집중되어 있었다.
완전 마취가 안되니 국소마취 후
편도선을 제거했다.
일곱 살 어린이에게 그것은, 두려움과 더불어
무시무시한 통증이었다.
울며 입을 벌리고 수술받는 나를
보기 힘들어한 건, 젊은 간호원이었다.
종합병원 간호원이던 엄마가
담력이 약하던 그 젊은 간호원을 대신해
날 붙잡고 수술을 마쳤다.
떨어져 나간 편도는 종양 같았다.
수술을 어렵사리 마친 후의
고통은 일곱 살 어린이에겐 너무 컸다.
일단 침을 삼킬 수 없어 뱉어내야 했다
"투게더는 무슨"
삼킨 건, 울분이었다.
어린이에게 찾아온 모진 시련...
이주쯤을 앓다 보니 더디지만
상처는 아물었다.
편도선 제거 수술 후
그렇게 분기별로 찾아오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상처가 어렵사리 아물 즈음
또 다른 아픔이 저만치 대기하고 있었다.
이어서 다음 편에...
<덧붙여서>
오십 년이 지난 그 시절의 기억이
이토록 생생한 건 '왜'일까
어제 먹은 점심도, 냉장고 문을 열고도
뭘 가지러 왔는지 깜빡하는 지금 말이다.
그래서 붙들어 두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추억이라는 이름의 아련한 기억이 그리워서,
그것이 아픔이었을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