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기억하다
친구의 어머니가 얼마전에 돌아가셨다.
몇달 전에는 또 다른 친구의 아버지
부음을 받았다.
친구의 아이들이 차례로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때이니, 우리 나이가 적지않다.
물론, 친구 부모님 연세는
한국의 평균 수명을 웃도셨다.
언제고 하늘의 부름을 받을수 있는
나이셨으니,늘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고3이던 마흔 여덟에
일찌감치 세상을 뜨셨다.
장녀인 나는 고3,대입 준비로
분주하던 때였다.
아버지를 잃은 충격과 슬픔은
컸다.
큰 딸을 유난히 예뻐해주셨다.
워낙에 말수가 적었던 아버지였지만,
우린 늘 돈독했다.
그래서 간경화로 투병하실때의
내 슬픔은 깊었다.
아버지가 곧 떠나가실까봐 두려웠다.
근처 교회에 새벽기도를 나갔다.
대단한 믿음이 있지도 않았지만,
그렇게 아버지 목숨을 좀 더 붙잡고싶었다.
병세가 깊어져서 죽음을 준비해야겠다.
목사님이 집으로 오셨고,
아버지에게 세례를 주셨다.
머리맡에 앉아서 성경을 읽어드리곤 했다.
가시더라도 아빠는 꼭 천국에 계셔야 했다.
그런 몇 날을 보낸 새벽,
엄마가 나와 동생을 부르셨다.
"아빠가 돌아가셨다.
손을 한번 잡아 드리렴"
내 기억에 그 손은 이미 식어가고 있었다.
주검은 조금씩 경직이 시작되고 있었다.
아빠의 영혼이 떠나갔음을,
'실감할 수'없었다.
아빠는 더 깊은 새벽에 세상과 작별한 듯했다.
엄마는 고3의 깊은 숙면을 깨울 수
없었던 것일까.
지금의 내 나이보다 무려 열살이 적은
마흔 여덟이셨다.
잔인한 이별이었고,
슬픔은 심연처럼 깊었다.
구순,백세 장수하신 분들이
세상을 떠나시면 '호상'이라한다.
산 사람들이 멋대로 그렇게들 정의한다.
절반의 시간만
세상에 계셨던 아버지.
친구들 부모님의 부음이 슬펐다.
절친들이고 부모님도 뵌 적 있었기에
울음이 나왔다.
그리고 내 아버지 생각이
무던히도 났다.
"아버지,
그 곳에서 평안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