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녀를 심적으로 많이 의지하던 홀엄마를 두고 선택한 결정이었다.
내가 원하지 않는데 떠밀려서 왔다고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와서 보니 예상했던대로 모든 것은 낯설었다.
곧 둘째를 임신하며
네살배기 큰 아이를 케어하는 일상이었다.
둘째 출산 후 우연히 집 근처 교회를 나가게
되었다.
답답하고 울분이 많던 내게
위로받을 공간이 필요했다.
내게 이런 시련을 주신분이
하나님이라면 따지고 싶은 이유도 있었을 거다.
나 외의 모두가 똘똘 뭉쳐서
즐거운 신앙생활을 이어가는듯 보였다.
육 개월쯤 된 둘째를 핑계로 예배만
드리고 곧장 집으로 돌아오는 신앙생활이
오래도록 맥없이 이어졌다.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할 때 즈음이었을까.
성가대의 찬양을 듣는데 이유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봇물이 터진것처럼 실컷 울었다.
'찬양이 마음을 건드렸다.'
이민사회의 출석 교인들은 부침이 심했다.
유학과 방문등의 다양한 이유가
꾸준한 출석으로 이어지지 않는 탓이었을 거다.
그렇게 공석이 생긴 자리에
찬양대원으로 함께하게 되었다.
뛰어날 것 없는 평범한 목소리로
오랜 시간 성가대를 섬겼다.
이민생활 20여 년,
한 분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신앙의 중심을
지켰다.
오고 가는 많은 사람들과의
교제속 아이들은 커 갔다.
이민사회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정체성과, 사람 사는 곳에서 다를 거 하나없는
요인들이 쌓이며 교회와 멀어졌다.
한결같은 목자로서 소임을 다해주신
목사님의 사임과 뜻을 같이 했다고
보는게 맞을 것 같다.
성경 중심의 목사님 설교는
이민자의 삶을 지탱시켜주는 기반이
되었다.
울림 있는 말씀으로,
선한 섬김으로, 소나무처럼
꼿꼿이 자리를 지켜주셨던 목사님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리고 싶다.
이후 더 이상,
유형의 예배당 출석은 하지않는다.
내 안에 하나님과의 시간이
더 깊어져야 하는데 사는것을
핑계로 게으르다.
목사님 가정과는 인간적으로
늘 좋은 교제를 나눌수 있어 감사하다.
고단한 이민 사회에서
의지할 수 있는 벗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동역자로
앞으로도 함께 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목사님,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