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와서 10여년은 전업주부로서
두 아이의 엄마 역할에 올인 했었다.
아이들이 엄마 손을 덜 타게 될 때쯤
시작한 식당일이 10년이 가까와진다.
한국에서였다면 내가 식당 서버로
일할 가능성은 전무 했을 것이다.
제3국에서 온 외국인이나 교포분들이
상당수 식당 직원으로 종사하는 모습을 봤다.
한국은 경쟁과 트렌드 모든 것에 민감하게
대응하다 보니 치열함이 '어나더 레벨'이었다.
영업 시간도 길지만, 노동량 면에서도
어정쩡한 나 같은 사람이 해낼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한국이었다면, 학력있는 사람이 할 일은
아니라는 인식도 있었을 것이다.
최저 임금도 낮았고, 팁 문화가 아닌 점도
캐나다와의 분명한 차이점이다.
한 곳에서 일하면서 만난 언니들과는
비슷한 시기에 들어와 지금도
동료로써 함께하고 있다.
이직이 잦은 식당업계에서, 우리는
미련하리만큼 우직한 캐릭터이다 싶다.
평균적으로, 직장 은퇴를 하고도 남을
나이다.
그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로
지금의 노동은 감당할 만한 돈벌이였다.
몸이 기억하는 익숙한 노동,
움직임과 접객은 정신 건강에도 좋다.
일 마치는 순간 집까지 일거리를
들고 올 게 없는 단순함도 장점이다.
나는 파트타임을 하고 와서,
느긋하게 일요일 오후 시간을 즐긴다.
두 언니는 일터에서 지금 시간도 열심히
맡은 일을 감당하는 중이다.
서로 의지할 수 있는 벗으로,
동료로 강산이 한 번 바뀔만큼의 시간을 같이 했으니 감사한 인연이다.
이국땅에서 만나 10년이면,
'해병대 아저씨'들의 그것처럼
단단한 결속이 생겨난다.
낯선 땅에서 만나, 늦은 인연이지만
그렇게 우정을 쌓아간다.
나름의 고충도 '서로 익히 아는 바'이기에
'척하면 척'이다.
힘들면 서로 속을 털어놓을만큼 허물이 없다.
또 시작할 새 날을 위해,
서로 응원해 줄 수 있는 관계로 있어서
고맙고 든든하다.
언니들, 우리 잘 하고 있죠.
더워지는 계절에
건강 챙기며 열심히 달려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