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의 아침 기상

[바스락] 또는 [삐그덕]

by 남기다

순례길의 아침은 누군가의 부지런함으로부터 시작된다.


[바스락] 또는 [삐그덕]


고요한 숲 속 도토리 한 알의 낙하가 지진과 같은 울림을 내기도 하듯,

동굴 속 종유석 끝자락에 맺힌 물방울이 안간힘을 쓰다 추락하며 내는 울림과도 같이.


남에게 피해 주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내는 소리는 묘하게 잘 들려온 숙소를 울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 소리의 떨림은 결코 기분 나쁜 데시벨이 아니다. 배려의 소리이자 부지런함의 소리이다. 신기하게도 이 소리에 적응이 되면 알람이 없어도 잘 일어날 수 있다. 오히려 나를 위한 알람이 아니었을까 라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조심히 일어나야 한다. 숙소 대부분의 1층 침대는 층고가 낮아 대차게 머리를 부딪힐 수가 있기 때문이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 1층일지 2층일지는 고를 수가 없다. 대게 홀수 또는 짝수의 침대 번호를 넘겨주는데, 짝수가 1층인지 홀수가 1층인지는 숙소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이 별 것 아닌 종이 한 장이 그날의 행복을 결정하기도 한다. 가끔은 층고가 너무 낮은 1층에 걸려버리면, 2층이 부러워진다. 대체로 힘차게 일어나는 편이라 머리를 자주 부딪혀 그런 것 일 수 있겠다. 이렇게 요란한 소리를 내며 침대에 머리통을 부딪히면 누군가 조심스럽게 나갔던 순간이 미안해질 정도로 다른 이들의 또 다른 알람이 되기도 한다.


일어나 제일 먼저 할 일은 짐을 싸는 일이다. 짐을 싸는 요령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저 침대에 깔려있는 침낭을 열심히 구겨서 가방에 넣기만 하면 된다. 옷은 갈아입을 필요가 없다. 전날 도착해 샤워하고 갈아입은 옷이 오늘 걸을 옷이다. 그러고는 바로 출구로 나선다. 이 짧은 과정 덕분에 기상부터 숙소 입구를 나서기까지 5분에서 10분 정도면 충분히 나설 수 있다. 늦여름과 늦가을의 어느 중간에서 걸은 내게 아침 공기는 늘 차갑다. 힘껏 숨을 들이마신다. 코끝을 통해 출발하는 찬 공기는 빠른 속도로 폐를 거쳐 입 밖으로 달려 나간다. 차갑지만 맑고 시원하다. 도시에서는 맡을 수 없는 시골 공기냄새. 공기에도 향기가 있다고 믿는 나로선 최고로 맑은 공기다. 간단히 스트레칭을 하고 허리를 숙여 신발끈을 동여맨다. 나의 여정에 있어서 가장 고생이 많고 고마운 동반자임에도 매일 아침 이렇게 귀찮은 말썽을 피운다. 늘 100프로 맘에 드는 상황도, 물건도 없나 보다. 아침이라 굳어있는 내 몸을 조금이나마 더 스트레칭시켜주기 위해 생긴 일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발걸음은 이상하리 늘 가볍다. 내가 걸을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던 전날 밤과는 달리 다리라는 녀석은 조금만 쉬어주면 '나 준비됐어요' 하고 쌩쌩해진다.


가벼운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늘 정해져 있다. 내가 만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카페에 들른다.


일종의 루틴이랄까.. 그러나 '반드시'는 아니다.


내려놓기 위해 떠난 이 길에서

'반드시'
그리고
'무조건'

이라는 단어는 잠깐 잊어두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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