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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죄와 벌"의 현장을 가다

최고의 여행(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

by 정달용

12. "죄와 벌"의 현장을 가다


☞ 2016.10.02(일)


생페테르브르크에서의 이틀째

드디어 어제저녁 호텔에 일정을 풀고 이제부터 생페테르브르크 시내 구경의 시작이다.

첫 번째는 marinsky극장에서의 "피에로의 결혼"이란 제목의 오페라 관람이다.

극장의 규모에 먼저 기가 질린다. 어마어마한 근대 유럽식 건물, 많은 사람들이 오페라 관람을 위해 몰려들었다. 우리도 예약한 좌석을 찾아 앉았는데, 한 5층 높이는 되나 보다.


까마득하게 보이는 아래에 있는 무대를 보이기 위해 좌석은 약간 앞으로 기울어져 있어서 몸이 금방이라도 앞으로 쏠리며 떨어질 것 같다. 특히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무대를 바라보자니 공연의 감상은 고사하고 불안함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곤욕의 시간이었다.


이곳에서 어떻게 몇 시간을 관람할 수 있을까? 걱정이 태산 같았지만 끝까지 관람할 수 있었다. 사전 줄거리를 알고 보라고 아들이 패드에서 검색하여 주는 바람에 그나마 잘 볼 수 있었다. 실은 총 4막 중 2막까지만 보고 나왔단다. 중간 쉬는 시간에 우린 끝난 줄 알고 나왔지만…

그리고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토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의 배경이었던 곳을 구경하기로 했다.


먼저 이곳의 자연환경부터 이야기해야겠다.


지금까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수 만리 달려왔지만 우리나라처럼 산과 들이 어우러진 곳을 볼 수가 없었다. 신기하게도 높다고 해야 우리 비탈진 언덕 정도, 이곳 생페테르브르크의 시가지도 높낮이가 없이 평평한 도시고, '죄와 벌'의 배경인 이곳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강이나 시냇가도 우리처럼 폭우에 범람을 예방하기 위한 제방도 필요 없고, 생활 주변의 바로 옆에 도로와 수로가 같이 어우러져 있었다.


어느 다리를 건너서 교차로 모서리 건물에 '노파의 집'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처럼 생각했던 나는 고개가 갸웃뚱하기 시작했다. 주인공의 흔적을 보러 왔는데 표지석이나, 안내문 하나 없다. 싱거운 생각으로 주인공인 라이꼴리니코프나 소냐의 집에는 설마? 하고 그리로 찾아갔다. '죄와 벌'을 집필했던 작가의 집은 건물벽에 현판으로 약력이 쓰여있을 뿐, 소냐의 집에도, 라이콜리니코프의 집에도 건물만 확인했을 뿐, 주인공의 집, "좁고 천정이 낮아"등 상상했던 모습은 확인할 수 없었다.


우리 같았으면 잘 꾸며놓고 관광명소로 만들었을 텐데...

코쿠시킨 다리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센나야 광장에서 범죄에 대하여 회계하고 엎드려 땅에 키스하는 장면을 회상하며 식당으로 향했다.


이곳도 고려인이 운영하는 한식당, 나는 김치찌개에 공기밥 하나, 아들은 비빔밥, 우리 같으면 제반 반찬이 나오겠지만 반찬 하나하나가 돈 주고 주문해야 된다.


하다못해 물 한잔도 돈이란다. 어처구니없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해를 하면서 식사를 했다.


다음 코스는 성이삭 성당 관람.

현지에 가서 그 규모에 또 한 번 놀랬다. 높이가 100m는 됨직한 화강암 돌기둥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고, 193 계단이라는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시가지는 아름답기만 하다. 전망대를 내려와 성당 내부를 들어서자 이곳도 어마어마한 규모에 또 한 번 놀랐다. 크고 웅장한 것도 그렇지만, 하나하나 그리고 만든 실내장식은 호화롭지 그지없다.


한편으로는 과연 인간의 욕망은 어디까지일까?라는 의문이 던져진다. 신앙을 얻는데 얼마만한 면적이 필요하며, 얼마나 높은 건물이 필요할까?. 어마어마한 규모의 성당이 과연 얼마나 많은 신자들에게 더욱 높은 신앙심을 갖게 할 것이며, 후대에 영원히 존재감을 갖게 한다고 해서 무엇이 그리 대단할 것인가? 또한 그 엄청난 재물과 노동은 백성과 신도들의 피눈물이 아니겠는가? 한 존재를 과시하기 위한 희생이 너무 크지 않은가? 다 부질없는 것을…

성당을 나와 공원을 가로질러 네바강으로 갔다. 강폭은 한강보다 1/4 정도 되지만 가득 찬 강물이 아름답고 친밀감이 느껴진다. 이곳에는 강변 인근마다 유람선을 대는 부두가 중간중간 널려있다. 몇 미터 걷다 배를 타고 싶으면 이용할 수 있는 예상보다 사회주의 치고는 줄길 거리가 시민과 아주 가깝게 있다고 느껴진다. 소설 속의 네바강을 생각하면서 아름다운 강변을 한참 걷다 숙소로 향했다.




저녁은 미리 봐뒀던 숙소 인근 일식 초밥집, 그리고 러시아 보드카 한 병을 사서 숙소로 왔다. 적지 않은 초밥과 보드카 한잔씩. 아들과 나누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어느새 한 병을 다 먹고, 술기운이 거나해진다. 잠을 자야겠다. 뿌듯하다.

이곳을 올 때 봤던 세계여행을 한다는 3명의 한국 젊은이도, 우리 구구도 "이제 세계인이 되었구나!" 하는 대견함이 들었다.


내가 저들만 했을 때 우린 영원한 3류 국가요, 주변 4강에 둘러 쌓인 고달픈 민족으로 배웠고, 그때마다 우리는 왜 1등 국가가 될 수 없나? 4강의 틈바구니가 아니라 4강의 중심에 우뚝 솟은 대한민국은 될 수 없나? 가슴속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었는데, 이제 이만한 국가의 위치, 이만한 젊은이들의 개방적이고 자신만만한 세기,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우리도 1둥 국가, 4강을 어눌을 수 있는 대한민국의 모습이 언뜻언뜻 보이지 않는가? 그래도 아빠라고 건강을 생각한다. 술 많이 먹지 말라고, 그리고 아빠 허리를 안마해 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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