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들
고맙다. 어느새 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시작할 때 오는 2년은 아득했는데 도착해서 뒤돌아 본 2년은 잠깐이었다.
2년이 조금 지난 202×년 연말.
이제 취업을 해야지.
정부에서 운영하는 "Work Net"에서부터 나를 소개하는 이력서와 자소서를 등록해 놓았다.
그리고 취업 사이트에서 내가 원하는 곳을 검색해 봤다. 아예 그 일이 일상이 되었다.
이느날 낯선 전화가 왔다,
정ㅇㅇ씨 맞나요?
예, 맞습니다.
여기 "영등포 ㅇㅇ"인데요, 혹시 구직사이트에 이력서 올려놓으셨나요?
예, 맞습니다.
전기기사 자격증 있는 것으로 아는데 맞나요?
예. 맞습니다.
컴퓨터는 잘하세요?
잘은 못하지만 웬만한 것을 합니다.
혹시 시간 좀 내실 수 있는지요?
.찾아간 곳은 내가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 수개월 다니던 학원 가까운 근처에 있었다.
그렇게 인연이 되어서 있게 된 "영등포 ㅇㅇ",
전기기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경력 2년을 쌓아야 전기 안전관리자 무제한 선임을 할 수 있는 자격이 되었다.
따라서 나의 우선 목표는 2년이란 기간의 경력을 쌓는 곳을 찾는 것이었고, 그중에서 일근을 할 수 있는 곳을 찾는 것이었다. 그 조건에 맞은 곳은 그리 쉽지가 않았다.
처음 전기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구직 사이트를 들어가 본 나는 내심 깜짝 놀랐었다. 내가 찾는 구인 사이트에는 24시간 격일제 근무하는 곳이 태반이었다.
"2년간 경력을 쌓고 가세요!"
첫 대면한 팀장님의 말이었다. 그 말이 고맙고 듣기는 좋았지만 앞으로 2년은 너무 멀리 있었다. 세상 일이 내 뜻대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것과 같아 자신이 없었다. 별 감정 없이 "고맙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런 인연으로 들어간 영등포 ㅇㅇ,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거쳐갔다. 때로는 서로 간의 갈등 때문에, 또는 회사의 재계약 시 미계약으로 짧게는 한 두 달 만에, 길게는 1년 만에 거의 떠났다.
그와 같이 자신의 소망을 이루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서 회사를 떠나는 사람을 거의 없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 유일한 사람이 나였다.
그만치 함께했던 동료들과 주변 동료들에게 고맙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 소망을 이루고 떠나게 해 준 회사에 고맙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람 간 갈등에 의해서 회사를 떠나는 일이 태반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곳에서 모든 것을 얻고 떠나니 내 삶에서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연말이 되어 재계약 시 떠나기로 마음먹었었다. 내가 더 있고 싶다고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해가 넘어가는 연말이 되기 한 달 전에 모든 직원들은 사직서를 냈다. 그리고 연말 회사의 처분을 바랄 뿐이었다. 물론 떠난다는 마음을 먹은 사람은 당연히 떠나겠지만 그런 사람은 드물었다. 대부분이 회사에서 재계약해 주길 바랄 뿐이었다.
나는 고민이 깊었다. 왜냐하면 내가 원하던 만 2년에 12일이 부족한 때문이었다. 그 부족한 12일 때문에 내가 소망하던 전기안전관리자 선임 자격을 취득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1년 동안 또 계약하기엔 너무 멀었고, 나만의 입장으로 1, 2개월 연장하자는 것은 더욱 안 될 일이었다. 그건 나만의 입장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회사도 1년 동안 전기실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사직서를 제출할 때 내 의사를 전달했다.
그리고 12월 어느 날 카페에 들러 가장 맛있고 비싼 차 두 잔을 사서 들고 소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소장님은 뜻밖이란 듯이 맞이한다. 그 소장님은 내가 이곳에 왔을 때 2년을 채우고 가라는 말을 해줬던 팀장님이었다.
"소장님!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그래 그동안 이곳에 있으면서 부족한 건 없었나요?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지만 만족합니다.
부족한 것이 뭔데요?
연말 퇴직하면 전기안전관리자 선임 자격을 취득하는데 12일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차후 다른 곳에서 채워야지요.
그런데 왜 그만두려 하나요?
재계약하려면 1년을 해야 되는데 너무 길거든요?
왜 꼭 1년을 계약해야 하나요? 원하는 때까지 계약하면 되잖아요.
그래도 되나요?
그럼, 당연히 되지요. 한번 생각해 보고 그걸 원하면 몇일 내로 본사에서 사직서 받으러 오니까 그전에 연락 주세요. 그래야만 사직명단에서 제외하니까요.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그동안 부족한 12일이 항상 마음에 걸렸었다. 그 막혔던 체증이 시원하게 내려가면서 개운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얼떨결에 소장실을 나왔다.
사직명단에서 제외하기로 한 몇일 후 다시 찾은 소장실에서 문의를 했다.
소장님! 언제까지 다닐까요?
다니고 싶은 때까지요. 하지만 사람 구할 때까지는 말미를 줘야 됩니다.
물론이지요. 그럼 2월 말까지는 어때요?
좋습니다.
그래서 최종 2월 말로 결정이 되었다. 이후 좋은 조건으로 2년간 더 근무할 수 없냐? 는 제안을 받았으나 정중히 사양했다. 그 제안은 너무 고마웠다. 내가 믿음을 줬다는 것에 고마웠다. 그렇지만 내겐 불편한 허리가 있었다.
"전방전위증"
오래전부터 진단을 받았으나 허리의 근력을 키우라는 간호사의 말에 헬스를 다니며 여태껏 견뎌왔다. 그리고 2년 동안 경력을 쌓고 집 근처로 직장을 옮기는 것이 나의 계획이었다. 그래야만 출, 퇴근 시에 걷는 것으로 불편한 허리 통증을 극복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그런 허리의 상태가 수개월 전부터 심해져서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 아침 출근 시간이 힘들고 붐비는 전철 안에서 서있기가 보통 힘든 것이 아니다. 붐비는 전철 안에서 어디 기댈 곳도 없고 손잡이를 잡을 수도 없는 상황이면 흔히 말하는 기절 할 정도였다.
이참에 불편한 허리를 고칠 겸 한동안 쉬는 것도 괜찮다고 마음을 먹었다.
퇴직 날자는 성큼 다가왔다. 드디어 퇴직을 눈앞에 둔 하루 전날 나의 송별식을 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 소식은 뜻밖이었다. 이런 직장에서는 수시로 들락거리기 때문에 누가 나간다고 해도 송별식은 없었다. 조용히 인사하고 떠나는 것이 관례였다.
퇴근 시간이 되었다. 인근의 송별식 장소에서 아쉬운 작별의 술잔을 나눴다. 또 하나의 이별이었다.
이곳에서 있었던 2년 남짓의 기간, 내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의 마주했던 사람들로부터 내가 떠날 때 전송 해 주던 동료까지 함께했던 기간을 바라보는 느낌은 고맙다는 것과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는 것이다.
비록 2년이란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 기간보다 훨씬 소중한 마음을 듬뿍 담고 가는 곳이었다.
송별식을 마치고 1년 남짓 함께했던 ㅇ ㅇ 동생과 차 한잔을 했다. 나도 그가 고마웠고 그도 나와 헤어짐이 아쉬운 모양이다.
그러나
"만남은 헤어짐의 약속이라."
그것을 누가 막으랴?
찻집을 나와 집을 향하는 초로의 사나이, 그렇게 또 하나의 내 삶의 마디는 이어지고 있는데, 겨울이 가기 전 도심 속 밤바람은 차갑다.
문득 40년 남짓의 직장 생활을 마무리하고 퇴직할 때의 송별식이 떠오른다. 성대하고 화려했던 퇴임식과 명퇴의 칼바람에 뿔뿔이 헤어지는 동료들이 아쉬워 만들었던 "매ㅅㅁ"에서의 축하해 주던 때가 생각난다.
송별식이 끝나고 취중에 바라봤던 차가운 도심 속 달의 모습이!
그리고,
빠르게 지나가는 세월 속에서 스치고 지나가는 그리운 사람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