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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엉이 없어"

삶이란?

by 정달용

1. "부엉이 없어"


무더운 하루의 시작이다. 일어난 시간은 평범했지만 바쁘게 달려가고 있는 세월은 7월의 문턱을 넘어가고 있다. 초여름부터 기록을 세우더니 뜻밖에 일찍 물러난 장마 때문에 세상은 온통 가뭄으로 난리가 났었다. 장마는 그 소리를 들었는지 한 차례 전국을 휩쓸고 지나가며 큰 상처를 남겼다. 그리고 불과 며칠, 이제부터는 폭염의 세상이 왔다. 장마도 멀리 물러갔으니 제 세상이 된 것이다.



눈을 뜬 평범한 토요일 아침, 활짝 열어 놓은 창문에서는 더위를 담은 공기가 예사롭지 않을 것을 암시한다.



이때 안방에서 문 여는 소리가 들리더니 손주가 조용히 내가 있는 거실로 나온다. 그리고 내가 앉아있는 이불 위에 눞는다.

놀이터에서


이제 내일이면 멀리 떠나는 딸과 손녀, 두 달 남짓 부모 집에 있다가 제 사는 곳으로 간다. 긴 여름방학을 틈 타 왔던 제 살던 곳, 제가 자란 곳, 딸과 함께 와서 진한 삶의 의미를 남기고 떠나려 한다.



"하루 밤만 지나면 아빠한테 간다. 좋지?" 이제 4살배기인 손녀딸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는 무언가가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더니 "할머니, 할아버지는?"이라며 울먹인다. 손녀딸도 이제 헤어져야 하는 것을 훤히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할아버지, 미국에도 부엉이 있어?" 잠시 생각해 보니 손주가 사는 그곳까지 무서워하는 부엉이를 기져 가면 안 될 것 같아 "그곳에는 부엉이 안 살아", 손주는 다행이다 싶던지 밝은 표정으로 바뀌면서 "왜 부엉이가 안 살아?"라고 묻는다. "거기에는 높은 산이 없거든. 그래서 부엉이가 살 수가 없어. 이곳에는 높은 산이 많거든, 부엉이는 높은 산에서 살아. 저기 봐 봐", 수리산을 가리키며 손주에게 말했다.



손녀는 할아버지가 놀잇감이었고 나는 손녀가 놀잇감이었다. 제 할아버지가 놀리면 손녀는 "나 할아버지 안 좋아해!"라고 한다. 그 말을 배우더니 너무 자주 쓴다. 요놈 못쓰겠다 싶어 부엉이를 데려왔다.



"저기 높은 산에는 엄청 크고 무섭게 생긴 부엉이가 살고 있는데 밤에만 돌아다녀. 깊은 밤에 "부~엉" 하고 울면 잠자던 모든 짐승들이 놀라서 벌벌 떨지, 부엉이는 말 안 듣고 잘 우는 애들을 잡아가기도 한단다. 너 할아버지 말 안 들으면 부엉이 오라고 한다"라고 하면 엉엉 울면서 제 엄마한테 달려가 안긴다. "할아버지가 부엉이 무섭다고 해",

마을회관에 가려 왜소해진 큰 정자나무


딸은 "아냐, 부엉이 안 무서워". 그러나 손녀에게는 부엉이가 엄청 무서운 짐승으로 남아있다. 따라서 내게 필요하면 부엉이는 소환되었다.



토요일인 오늘은 내가 살던 공주에 간다. 딸이 함께 살던 할머니가 잠드시는 곳, 그곳에는 제 증조할아버지부터 할아버지가 모셔진 곳이다. 특히 4년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는 내 딸에게는 나름 각별했다. 멀리 이국에서 살다 귀국하여 다시 돌아가야 하는 하루 전에서야 그냥 갈 수 없어 제 할머니를 뵈러 간다.



내가 태어나 자란 달밭에는 마을 입구에 정자나무 두 그루가 서 있었다. 그 정자나무들은 마치 마을을 지키는 듯 위엄을 뽐내며 누구든지 이 마을을 해치는 자는 용서치 않으리라고 큰 칼을 허리에 차고 서 있는 장군 같았다.



큰 정자나무와 작은 정자나무,


큰 정자나무


그중에서 큰 정자나무는 마을 사람들의 쉼터였다. 성인의 양팔로 세명은 뻗어야 달까 말까 한 수백 년 수령의 정자나무는 아래에는 커다란 맷돌과 밑 밭침돌이 있고 주위로는 마을 사람들이 걸터앉아 쉴 수 있게 자리를 만들어 놨다. 그리고 한쪽에는 무려 100kg이 넘을 정도의 둥그렇고 단단한 바위가 있어서 젊은 청년들의 힘자랑 도구가 되기도 했다.



오늘과 같이 무더운 여름이 되면 마을 사람들은 저녁을 먹고 이 정자나무를 찾는다. 여름밤은 덥고 후덥지근하니 잠은 오지 않고 그래도 정자나무 아래에 있으면 흔들리는 나뭇가지로 바람이 있어 조금은 시원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여름밤이 깊어지면 하나 둘 집으로 향하고, 저 멀리 동내산 깊은 곳에서 "부~엉!, 부~엉!" 하고 부엉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세상은 어둠 속에서 고요한데 여름밤의 적막을 깨고 들려오는 부엉이 울음소리는 누가 말을 하지 안 해도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하게 한다. 마치 금방이라도 큰 날개를 펴고 내 등짝을 낚아채는 것 같아서.



그 부엉이가 손주를 제압하는 도구가 될 줄은 전혀 생각을 못했다. 그러나 제 사는 곳에서는 도깨비 보다도 더 무서워하는 부엉이를 없애야 하겠다. "네가 사는 곳에는 산이 없지, 그래서 그곳에는 부엉이 없어, 부엉이는 저런 높은 산에서만 살거든!" 손주는 그때서야 놀란 눈이 다시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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