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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운명

우리 할머니

by 정달용

1. 운명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할머니의 사랑 속에서 자랐다. 우리 할머니 위치에서 보면 아마 4남 2녀를 둔 4남매의 손주들 중에서 큰 형님 다음으로 귀여움을 많이 받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 할머니는 1998년에 태어나셨고 내가 1958년생이니 꼭 60년 차이다. 지금 계산해 보니 할머니는 내가 태어났을 무렵 그때는 흔치 않던 환갑이셨다.



손주가 바라보는 우리 할머니는 거의 100년의 삶을 사셨지만 그 긴 세 월 만 치나 골곡이 심한 삶을 사셨다.



나의 할아버지는 아들 하나와 청춘인 아내를 남겨두고 29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다.



남편 잃은 27살 새댁과 7살 된 아들 하나,



이들의 미래는 뻔한 이야기였다. 무겁고 험한 삶에 지치고 꺾여 편한 삶을 찾을 법도 하였건만 우리 할머니는 걷모습과 같이 그렇게 연약한 여인이 아니었다.



7살 어린 아들의 커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악착같이 사셨다는 것은 누가 말을 안 해도 짐작이 갈만하다.

우리 할머니



할머니의 눈에는 하늘 아래 오직 아들만이 있었다. 남편 일찍 세상 뜨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세상의 전부였던 것이다.



그 아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삶을 희생하셨던 할머니의 바람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그 아들은 장성하여 집안의 든든한 기둥이 되었고, 부지런함으로 주위에서 소문날 정도로 부지런하게 사셨다.



때문에 재산도 하나 둘 늘려 동네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농사체를 갖게 되었고, 외아들이었던 외로움을 벗어나 6남매의 든든한 손주를 보았으니 얼마나 든든하셨을까?



그러나 누가 인과응보(因果應報 행한 대로 그 대가를 받는다)라 했던가? 세상을 다 얻은 것 같던 할머니의 삶을 세상은 그대로 놔두지를 않았다.



시기심이 많던 염라대왕은 우리 할머니의 행복을 빼앗아 갔다. 그것도 가장 아픈 곳을 건드렸다.



당신의 전부였던 아들을 빼앗아 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큰 불효는 부모 앞에서 자식이 먼저 세상을 뜨는 것이라 했거늘 하늘은 무슨 원한으로 이런 비극을 만드는가?



50살이 되던 정월에 나의 아버지, 당신의 전부였던 아들을 데려갔다. 떠나는 아들도 노모 앞에서, 아내를 두고, 아직 커가는 자식들을 두고 감히 눈을 감지 못하고 세상을 뜨셨다.



할머니는 가끔 말씀하셨다.



"네 아비가 죽고나선 나는 목이 뚝 부러진 것 같다"라고



나의 아버지는 우리 집안에서 기둥이었다. 20대 청춘에 남편 잃고 청상과부가 되어 7살 어린 아들 하나만 바라보며 사신 할머니는 하나뿐인 아들이 당신의 전부였고, 나의 어머니는 평생을 함께해야 할 든든한 기둥이었고, 이제 커가는 자식들에게는 생명줄이었던 나의 아버지였다.



그런 할머니에게 큰 형님은 많은 정성을 쏟았다. 아버지의 못다 한 효도를 큰 형님은 대신이라도 하듯이 남달랐다.



아무리 손주가 잘한다 해도 자식만큼만 하랴? 마는 그래도 할머니의 커다란 빈 공간을 어느 정도 메워 준 것이 큰 형님이었다.



아들 잃은 할머니와 남편 잃은 나의 어머니의 애환은 같았지만 서로 보듬기보다 삶이 힘들고 짜증이 나다 보니 보통의 시어머니와 며느리(고부 姑婦) 사이와 같이 종종 갈등이 심할 때도 있었다.



그것은 할머니는 할머니대로 당신을 두고 먼저 떠난 아들에 대한 원망이었고, 어머니는 어머니 대로 삶이 외롭고 힘들 때면 일찍 떠난 남편에 대한 원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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