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 상처

우리 할머니

by 정달용

<2. 상처>

가 커가면서 할머니의 심정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 할 무렵 할머니에게 커다란 상처를 드렸다.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의 어느 여름날이었다.


해는 하늘에 떠 있기가 힘겨운 듯 서산으로 기울고 조그만 달밭 고랑탱이의 빼곡하게 들어찬 집집마다에서는 저녘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었다. 그때면 나는 사랑방 앞에 있는 쇠죽 끓이는 솥에 구정물을 붓고 여물을 듬뿍 넣은 다음 불을 땐다.


농사를 짖는 시골에서 소는 가족 못지 않은 소중한 자산이었다.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소는 해줬다. 논이나 밭을 갈아 줬고, 논에 모를 심을 수 있도록 물을 가득 채운 논을 평평하게 하기 위한 써래질을 하는 일을 소는 해줬다.


게다가 일 잘하는 소는 남의 집에 가서 일을 해 주고 품삸을 받아왔다. 소는 힘든 일을 하기 때문에 사람 품삵의 두배로 비싸게 쳐줬다.


우리집은 오래 전부터 소를 키워왔다. 그리고 길이 잘 들어 있어 소를 부리는데 좀 서툴러도 제가 눈치껏 하니 동네에서도 인기가 있었다.


따라서 집에서도 대우를 받았다. 그런 소의 뒷바라지는 나의 몴이었다.


들에 나가 소에게 풀을 띁겨 배가 불룩하게 들어와야 긴 밤을 재우고 다음날 힘든 일을 시킨다. 그리고 저녁에 쇠죽을 끓여 여물통에 그득 담아주면 소는 코에서 하얀 입김을 내품으며 맛있게 먹는다.

내 삶의 터전

그날도 시골의 평범한 하루가 지나고 저녁을 먹기위해 밥상 앞에 앉았다. 나는 할머니 옆에 앉았고 큰 형님은 맞은편에 앉아서 식사를 하려는 순간, 할머니는 평소와 같이 밥을 덜어 내 밥 그릇에 얹으셨다. 먹는 것이 귀했던 시절 배 골을까봐 손주에게 더 먹으라고 하는 노인들의 사랑 표시였다.


어린 나는 할머니의 그런 모습이 내심 싫었다. 그래서 그만


"아이 씨"


말이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그 말을 들은 큰형님은 심하게 나를 나무랬다. 나는 골이나서 밥이 목에 메였다. 나는 밥 먹던 수저를 내려놓고 작은 방으로 갔다.


그러나 할머니에 대하여 가볍게 처신했던 부끄러움인지, 형님한테 야단 맞은 것이 속이 상한건지 아니면 두 개가 복합된 건지 모르게 마음이 아팠다. 분별하기 모호한 눈물이 자꾸 흘렀다. 마음을 삭이려고 정자나무 아래에 가서 누웠다.


여름밤의 더위는 정자나무의 흔들리는 잎사귀 사이 이는 바람소리에 조금씩 물러가는데 내 마음은 사방에서 울어대는 밤 벌레 소리에 묻혀버리고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냥 화가 나고 마음은 무겁다. 집에 들어왔다.


할머니는 손주의 불손한 모습에 노여워 할 법도 할텐데 당신 때문에 속상해 했을 손주에 되레 미안한 듯 남겨진 수박을 먹으라 하신다.


지금 생각해도 부끄러움이 앞선다. 그리고 큰형님께 고맙다.

소의 무릎 같은 우슬의 마디

우리 음말 밭 위로는 6촌 형님의 밭이 붙어 있다. 그 밭에는 풀이 무성하고 한약재로도 쓰이는 우슬이 다른 풀들 속에서 자란다. 그 우슬의 줄기는 꼭 소의 무릎처럼 마디가 뭉뚱하게 맺혀져 있다. 그 마디와 마디가 이어져 우슬의 무성한 줄기가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순간 순간 크고 작은 두 갈래 길이 나온다. 그 때마다 선택을 요구 받기도하고 무심히 넘어 가기도 한다. 나의 삶도 우슬처럼 수 많은 분기점들이 모아져서 불규칙했던 나의 미래가 엮어졌고 현재의 내 모습이 있게 되었다.


그때 다행이도 형님 덕분에 틀어지려는 나를 바르게 세울 수 있었던 굵직한 마디의 흔적으로 남겨졌다.



《1973. 8. 4 토 해》

"어느덧 구름이 벗어지고 있었다. 새카만 하늘이 푸른 하늘로 바뀌는 오늘, 벼의 목은 하나 둘씩 나오기 시작한다. 그런가하면 "이제 농사는 다 지었구나!"


가을이 되었다는 소식이 고추잠자리로부터 알려주고 있었다. 많은 고추잠자리는 맑은 하늘에 날고, 아! 가을이 왔구나, 춥지도, 덥지도 않은 가을 처럼만 느껴진다.

내가 심은 수박은 무르익어 간다.


오늘도 앞날을 위하여 열심히 걸어가고 또 걷는다. 나의 졸업도 만 4달 남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1. 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