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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도 너만 한 때가 있었는데!"

우리 할머니

by 정달용

3. "나도 너만 한 때가 있었는데!"



우리 할머니는 98세에 돌아가셨다. 누가 말하듯이 한 많은 삻을 사시고 떠나셨다. 그것도 거의 100년을 가까이 사셨다.



정정하셨던 할머니는 큰 형님 집에서 사시던 어느 날 안방으로 식사를 하러 가시다 문턱에 걸려 넘어지셨고 골반이 골절되었다. 침대에 누워 꼼짝을 못 하시는 할머니가 안쓰러워 어떻게라도 고쳐드리려 했으나 연세가 드셔서 수술 중 돌아가실 확률이 높다는 의사의 소견을 듣고 포기하게 되었다.



이후 어느 날 나는 결혼을 하게 되었고 신혼여행을 갔다 돌아와 내가 사는 시골에 인사를 드리러 갔었다.



할머니는 이인국민학교 아래에서 구멍가게를 하며 살던 큰 형님 댁의 작은 방에 누워계셨다.



우리 할머니는 한복으로 이쁘게 차려입은 막내손주 며느리의 손을 잡고 바라보시며



"나도 너만 한 때가 있었는데!"



라고 말씀하셨다.



할머니의 흐릿한 눈 빛에서는 수십 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당신의 과거로 향하고 있었다.



옆에 서 있는 손주며느리의 모습 속에 스쳐 지나가는 할머니의 젊었던 시절이,



순간 나의 머리는 둔기로 얻어맞은 것 같이 멍해졌다.



우리 할머니가?

연포에서의 일출



이렇게 젊은 때가 있었다고?



30년을 살아오는 동안 나는 언제나 우리 할머니를 보통의 할머니의 모습으로만 보아왔지 꽃다운 청춘이 있으리라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나는 할머니의 과거로 돌아가봤다. 과연 할머니의 꽃다운 시절은 언제였을까?


17살 꽃다운 처녀는 두 살 연상인 청년을 만나 달밭이라는 낯선 곳에서 삶의 보금자리를 틀고 미래를 꿈꾸었을 할머니, 오직 7살 된 아들 하나를 남겨둔 채 훌쩍 떠나버린 낭군,



바로 그때까지가 할머니의 꽃다운 청춘이 아니었을까? 당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척이나 길어버린 삶 중에서 상대적으로 짧은 아름다운 시절이 할머니에게는 누구보다도 더욱 진하게 남아 있을 것 같았다.



아담한 체구에 고왔던 얼굴, 영락없는 한국 여인의 모습이었다. 그 연약한 몸에서 누가 보아도 상상하기 어려운 시련을 극복하는 힘이 나왔을까?



7살 어린 아들과 그것도 모자라 위로는 시어머니를 모셔야 하는 여인의 삶은 무슨 말로 표현을 할 수 있을까?




나의 모친이 시집오셨을 때 시할머니를 보셨다 하니 우리 할머니의 살아오신 삶은 초인적이었던 것 같다.



남들 같으면 쉬운 길을 찾을 법도 한데 우리 할머니는 그 길을 가지 않으셨다. 당신 앞에 고달픈 미래가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피해 가지 않고 어린 아들을 품에 안고 세상과 맞서기 시작했다.



마치 "장판파 전투에서의 조자룡" 같이 당신 앞에 서 있는 고난을 보고 물러서거나 무릎을 꿇지 않았다. 당당히 맞서 싸웠고 드디어 극복했으며 그것을 보고 자란 아들은 반듯하게 집안을 세워놨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손주는 뿌듯함을 느낀다. 우리 할머니는 이런 분이셨다고...



때문에 그 품에서 자란 씨앗은 어느새 보석이 되어 있었다고.



또한 그 혈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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