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들
테이블 앞에 앉아 이야기하는 큰형님의 이야기가 자꾸 가슴을 아프게 한다.
"앞으로 2, 3년"일 것이란 말이...
그리고 여행을 가려면 내년 봄에 다시 가잖다.
그 내면에는 큰형님의 조급한 마음이 들어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집을 향하는 동안, 그리고 다음날 아침 눈을 떴을 때에도 그 말씀을 하시던 큰형님 모습이 눈에 밟힌다.
어느새 82세의 노인이 되어버린 큰형님의 모습에서 세월의 흔적이 여기저기 진하게 배어있었다.
전화 벨 소리가 울린다. 전화기를 보니 새벽 5시 반!
상도동 형님의 전화다.
어쩐 일로 이렇게 이른 새벽에 전화를 할까? 란 생각으로 전화를 받았다. 지금 출발한단다.
웬일일까?
평상시는 너무 늦어서 항상 허둥대던 상도동 둘째 형님이었다.
오늘은 좀 늦게 출발하라고 내가 되례 요청하는 꼴이 되었다.
금정역에서 형님을 태우고 공주를 향했다. 큰형님을 만나 1박 2일 가을단풍 구경을 가려는 참이다.
어디로 갈까 고민을 하다 큰형님의 뜻대로 군산 선유도로 향했다. 마음 한편에선 단풍을 구경 할 수 있는 보은 속리산도 눈에 들어왔으나 다리가 불편한 형님을 생각 해 따르기로 했다.
서천을 지나 군산으로 가는 길은 순탄했다. 군산 시내를 지나고 있는데 이곳의 빵이 유명하다는 작은형의 말에 급히 차를 돌려 빵 굽는 오남매 빵집을 찾아 갔다. 소문에 걸맞게 맛있다.
이어서 가던 길로 다시 달려가기 시작했다. 얼마를 달리자 군산과 선유도를 잇는 잘 닦여진 도로가 나왔다.
한참을 달려 육지가 된 섬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곳이 종착지가 아니었다. 여러개의 섬들이 여기저기 바다 위에 떠있는데 그중 가장 큰 섬이 선유도였다.
선유도를 지나 장자도라는 작은 섬에서 도로는 끝나고 있었다. 그 섬의 끝에는 제법 가게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고 이곳을 찾는 많은 여행객들과 좌우의 주차장에는 자가용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일반 식사용 식당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웬 호떡집들만 들어서서 손님을 부르고 있었다. 우리는 오뎅과 호떡으로 요기를 하고 부안의 채석강을 향했다. 채석강은 아주 오래 전 석수축구회에서 갔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바람은 제법 차갑고 세게 분다. 나와 아내만이 바닷가 채석강의 모습을 구경하고 나왔다.
큰형님과 형수님은 성치 않은 무릅 때문에, 둘째형은 얼마전에 와봤다며 채석강 입구에서 우리를 기다렸다. 우린 다시 승용차에 몸을 실었다.
어디를 갈 것인가? 내장산을 생각해 봤으나 많이 걷는다는 말에 마땅하게 갈곳이 없었다.
영광을 향했다.
이곳은 처가가 살던 곳으로 지금은 처작은아버지가 살고 있었다. 아내의 기억속에 크게 남아 있는 처할머니와 장인의 유골이 모셔져 있는 곳이다. 아내는 전부터 이곳을 한번 가보고 싶어 했으나 아직까지 마음뿐이었다.
이참에 아내의 소망인 처할머니도 뵙고 우리 형님들과 형수님께 영광이란 곳을 구경시켜 드리고 싶었다. 특히 법성포의 거하게 나오는 굴비정식을 맛보여 드리고 싶었고 빼어난 경관의 해안도로를 구경시켜 드리고 싶었다.
예상보다 일찍 저무는 요즈음 법성포에서 식사를 마치고나니 어느새 주변은 컴컴하다. 해안도로의 경치 좋은 펜션에서 하루를 묶고 처할머니가 계신 납골당에 들러 술 한잔 따라 드렸다. 형님도 "남도 아닌 사돈인데!" 라고 하시며 둘째 형님과 함께 술을 한잔 따라 올렸다.
보기에 좋다.
이어서 우린 고창의 선운사를 찾았다.
가을의 절정이지만 단풍은 아직 이곳까지 오지 않았다. 높은 좌 우의 산을 사이에 두고 평평한 지대에 들어선 선운사는 주차장에서 1km나 되는 곳에 있었다.
11월이 시작되는 일요일의 산사에는 단풍철을 맞아 엄청나게 많은 여행객들이 몰려오고 몰려간다.
다리가 불편하신 큰형님도 걱정과는 달리 잘 걸으신다. 되례 허리가 좋지 않은 내가 쉬엄쉬엄 힘겹게 걷고 있었다.
산사로 들어 올 때 절 입구엔 풍천 장어집들이 줄지어 있었다. 이왕 왔으니 풍천장어로 점심을 때우기로 했다.
점심을 든든하게 먹었으니 이제 공주 큰집으로 가야 된다.
드디어 공주 큰집에 도착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큰형님은 그동안 알뜰히 살며 모은 재산을 정리하는 이야기를 하셨다. 전에도 간간히 들었지만 오늘 동생들에 들려주는 이야기는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제 당신 삶의 모든것이 마무리 된 듯 한 모습이다.
82세의 큰형님!
일찍 세상을 뜨신 아버지를 대신 해 맏이로서의 무게를 묵묵히 짊어지고 일생을 사신 형님, 딸 하나에 아들 셋을 둔 자신의 삶만도 만만치 않았을텐데 아버지의 몴까지 감당하시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최근 몇년 사이 부쩍 늙으신 형님 모습에 마음이 아프고, 그동안 근근히 모은 얼마 되지 않는 재산의 자식들에게 분배 이야기가 마치 삶의 끝이 보이는 것 같다.
82년의 삶!
어떤이는 90, 어떤이는 100살이 되었어도 건강하게 보이는데 거기에 비하면 아직 청춘인 우리 형님이 오늘은 더욱 늙어 보인다.
언제 이렇게 세월이 흘렀단 말인가?
젊었을 때부터 현재까지 동생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형님의 모습이 절정을 향하여 가고 있는 붉게 물든 단풍의 화려함 뒤의 쓸쓸함 속에서 세월에 묻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