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머니
8월의 무더위는 세상을 삼킬 듯 하지만 빨랫줄에 줄지어 앉아있는 제비 가족은 즐겁기만 하다. 어미만큼 덩치는 컸지만 아직도 어린 티가 남아있고 모두가 어미 얼굴만 쳐다보니 어미가 한숨 돌릴 새도 없이 벌레를 잡으러 다닌다.
여름날은 일찍 새고 늦게 어두워진다. 농사일에 바쁜 나의 부친은 어둠이 물러나고 새벽녘 빛이 드리워질 때면 지게를 지고 들로 나가신다. 날이 새는 식전이 나의 아버지의 출근시간이었고 땅거미가 지는 어둠이 시골 들판에 몰려올 때서야 우리 아버지의 퇴근 시간이었다.
부지런한 제비들도 식전부터 배고프다 재잘대는 새끼들에게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다 바치지만 철없는 새끼들은 어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항상 제가 더 배고프다고 소리친다. 그러나 부지런함은 나의 아버지에는 못 미쳤다.
아침부터 후덥지근하던 더위는 머리 위를 향하는 태양의 열기에 모두가 힘들어하고, 점심을 먹은 농군의 아들은 내려오는 눈꺼풀에 마루에 드러누워 스르르 잠이 든다.
얼마나 잤을까.
여름 대낯의 꿈속에선 또 다른 내가 비슷하지만 같지는 않은 삶을 사는 모습이 언뜻 스쳐 지나가고 여름 한낯의 꿈은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아까 지저귀던 제비들의 배고픔은 여전하고 성질 급한 어느 새끼는 어미같이 날개를 편다. 더위는 들판의 곡식들도 어지러워 주저앉을 듯한데 매미들의 떼창으로 우는 소리가 더위와 팽팽히 맞서고 있을 그 순간 나는 꿈과 생시의 경계를 넘어 본래의 나에게로 돌아온다.
돌아본 꿈 속에서의 시간은 한참이었는데 눈을 떠 안방 벽에 걸린 쾌종 시계를 멍하니 바라보니 시계는 나를 보며 "땡" 하니 한 번이 울리고 만다. 대낮 한시다.
고개를 돌리니 곁에서는 할머니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지 마루에서 빤히 바라 보이는 저쪽 남쪽 하늘아래 상개고개를 바라보시며 손에는 부채를 들고 곤히 잠들어 있는 손주에게 부치고 계셨다.
잠든 손주가 더위에 잠이 깨지 않을까? 파리나 모기가 손주의 팔과 다리에 달려들지 않을까? 조용히 손주 곁을 지키고 있었다. 내가 잠에서 깰 때까지.
말은 히지 않았지만 할머니의 손주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듬뿍 담겨 있었고 그것은 온전히 손주에게 전달되었다.
그것은 우리 일상에서 말하는 사랑이 아니었다. 감히 할머니와 손주 간에 전달되는 따뜻한 감정은 "사랑해!", "나도 사랑해!" 그런 사랑하고는 다른 차원의 사랑이었다. 그것은 "지어지선(止於至善)의 사랑"이었다.
할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을까? 까마득히 보이는 올라가고 내려오는 몇몇 사람들을 보며 아침 장 보러 간 동네 누가 벌써 오는 걸까? 아니면 삼반에 사는 사람들일까?라고 궁금해하실까? 그것도 아니면 세상 무엇보다도 소중해던 당신의 아들을 기다리는 걸까?
우리 할머니는 당시 여인 치고는 글을 좋아하신 분이셨다. 어떻게 국문을 깨우치셨는지는 모르지만 글을 좋아하셔서 한지에 쓴 옛날이야기인 심청전, 춘향전, 토생전 등을 시간이 날 때면 소리 내어 읽곤 하셨다. 아들 잃고 시름을 글 읽는 것으로 대신하였고 시린 가슴을 메우는 기술이기도 하였던 듯하다.
어쩌다 외로워하시는 할머니를 보며 어찌할 수 없어 비라만 보는 손주는 가슴이 아팠다.
세월을 돌 릴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