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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삶의 기술

우리 할머니

by 정달용


6. 삶의 기술



막내 손주가 결혼을 하고 이쁜 손주며느리하고 둘이서 처음 할머니를 뵐 때 할머니는 "나도 너만 한 때가 있었는데"라는 말씀과 "여자는 꾀가 있어야 돼!"라는 말씀을 해 주셨다.


1898년에 태어나셨으니 그 무렵에는 남녀 간의 신분 차별이 클 때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꼭 그렇게만 생각할 것도 아니다.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제대로 교육을 받지도 못 한 우리 할머니의 입장에서 고상하고 품격이 있는 말로는 표현을 못하고 짧은 지식으로 표현하려니 그와 같은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된다.


할머니가 손주며느리에게 해주고 싶었던 것은


"여자는 지혜가 있어야 돼!"

라는 말이었을게다.


할머니가 말씀 한 "꾀"는 여우나 토끼가 쓰는 잔 꾀가 아니라 슬기롭게 살아가라는 뜻이었다.


그 슬기로움이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너무 고집스럽지 않고 때로는 돌아가라는 것이 슬기로움에 가장 근접한 말이 아닐까?


사람이 살다 보면 내 생각과 상충하는 것도 많고 내가 가고 싶은 길과 다른 길을 걸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내가 하기 싫은 것도 해야 할 때가 있고 갖고 싶어도 참아야 할 때가 있다. 모두가 꿈꾸는 대로 되지 않는 것이 삶이고 우리의 인생인 것이다.


젊은 시절 한때 내가 가야 할 길이 아닌 주변 환경이 자꾸 어긋날 때가 있었다. 나는 그렇게 어긋나는 삶에 대해서 원망을 하게 되었다. 그때 함께 같은 일을 하던 열댓 살 연배였던 분에게 푸념 섞인 말을 던졌다.


"나는 왜 하는 일마다 자꾸 꼬이나?"


그분은 너무도 쉽게 대답했다.


"세상일이 바라는 대로 다 되면 무슨 걱정이 있겠냐?"라고.


중학교 때인가 보다.

남해안으로 수학여행을 갔다.

어느 사찰 입구의 상점에 들렀을 때 벽에 걸린 목각이 눈에 들어왔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어린 나이에도 그 문장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 목각을 샀다. 그리고 오랫동안 눈에 잘 띄는 곳에 걸어 놨었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그 글은 내 삶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픈 날을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모든 것은 덧없이 사라지고,

지나간 것은 또 그리워지느리라.


"여자는 꾀가 있어야 돼!"라는 저승을 눈앞에 둔 백발의 할머니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마치 삶의 이치를 터득한 듯한 모습의 어느 청년 시인의 한마디는 둘 다 시련을 풀어 나가는 지혜를 함축하고 있다.


바로 삶의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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