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여행(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
☞ 2016.09.25(일, 오후)
천신만고 끝에 "99번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탈 수 있었다.
이 극적인 순간이 있었기 때문에 내 생에서 최고의 여행이 될 수 있었고, 또한 이 글을 쓸 수 있는 소재가 되었다.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는 나로서는 감히 꿈도 꾸지 못했을 16일간의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 그 짧은 순간 운명은 나의 손을 들어주었고 그것은 내 삶의 역사에서 최고의 순간으로 남게 되었다.
이틀간의 숨 막히는 순간들이 지나고 일단 예약했던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심신이 녹초가 된 아들과 나는 승무원이 배정해 준 창 측 2층에서 잠을 잤다. 우리는 심신이 너무 지쳐있었기 때문이었다.
눈을 붙이고 나니 쌓였던 피로가 조금은 풀린 것 같았다.
어두워지는 만주 벌판의 초원들, 우리의 산과 들이 적당히 어우러진 자연과는 조금 다르지만 스쳐 지나가는 어둠 속의 벌판은 신기하면서도 한적했다. 달리는 기차는 철거덕 철거덕 끊임없이 반복하며 달리는데, 이제야 꿈에 그리던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여행을 한다는 실감이 든다.
그러나 아직 감상에 젖을 때가 아니었다. 이대로 8일간 간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아찔한 상황이었다. 처음 예약 되었던 1층과 2층 좌석이 아닌 창 측 2층 침대를 둘 다 배정받았다는 것이다.
2층은 선반을 개조해서 만든 침대로 앉을 수도 없고 몸만 누울 수 있는 침대였다. 따라서 평상시에는 1층 공간을 공동으로 이용하고 잠잘 때만 이용하는 2층 침대였다. 그 2층으로만 우리에게 배정해 줬다. 매일 잠만 잘 수도 없는 것이고, 때로는 일상생활도 해야 될 텐데 또 이건 무슨 일인가? 암담했다.
기관사는 짧은 영어는 할 줄 알았다. 따라서 아들과는 어설프지만 서로의 의사소통은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왜 우리가 처음 예약한 좌석을 주지 않느냐? 수일 동안 2층 침대에서 어떻게 지내느냐? 고 항의도 하고 애원도 해 보고 한 끝에 드디어 처음 예약한 자리로 배정받게 되었다.
☞ 2016.09.26 (월, 아침)
이제 계획했던 여행이 시작되는 것 같다. 어제 저녁까지 얼마나 마음 졸이며 보냈던가? 아들이 잘 풀어 나간 것이 다행스럽고 대견했다.
현지시간 아침 7시의 차장 밖은 한가롭다. 자작나무 숲이 지속적으로 눈에 들어온다. 열차에서 잠을 자다 보니 아직도 어제의 피로가 안 풀렸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을 자고 있다. 좀 전에 지났던 taldan역은 사진이나 tv에서 봤던 시베리아의 일상을 담은 정경이었다.
taldan역은 하바롭스크에서도 북서쪽에 있는 보통 규모의 기차역으로서 블라디보스톡에서 23:50분 출발한 기차니 하루 하고도 7시간여를 달려왔다.
우리가 타고 있는 열차의 차량은 6인용 칸막이로 개조한 차량으로서 차량 창가 쪽에 2m가량의 침대 겸 의자를 2층으로 붙여 놨고, 통로를 마주하여 침대 넓이의 공간 중앙에 차나 책을 볼 수 있는 조그만 테이블이 있고 양쪽으로 2층 침대가 서로 마주하고 있다. 그 6명이 낮에는 공용으로 이용하는 테이블에서 낯선 사람들과 차도 마시고 이야기를 하며 장기간의 무료한 시간을 보낸다.
이 열차를 타고 있는 대부분의 승객들은 (구) 소련연방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서로가 웬만한 소통은 되겠지만 우리는 러시아어가 너무 생소하게 느껴졌다. 특히 억센 발음과 무표정한 모습은 처음 보는 낯선 러시아인들에게 근접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야 영어도 잘 할 줄 모르는 상태로서 오직 아들만 믿고 온 터라 더욱 그랬다. 특히 러시아인은 잠재적으로 영어를 배척하는 인식이 있어 설사 영어를 할 줄 알더라도 사용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왔었다.
그러나 싫든 좋든 어쩔 수 없이 6인실 한 실에 예약된 승객들은 함께 해야 됐다.
우리가 배정받은 6인실에는 우리 둘 외에 6개월간 원양어선을 타고 고기를 잡고 온다는 남녀 젊은이들 5명이 함께하게 되었다.
그 중에 백인의 러시아인 청년이 있었다. 그는 내 아들과 동갑내기로 영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알았다. 다행이었다. 모든 것이 생소했고 궁금한 것이 한 둘이 아니었는데 그 청년에 의해서 많은 궁금증이 해결되었고, 이중으로 들어간 기차 요금을 일부 환불받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 그가 아들과 기관사간의 통역을 해줘서 우리의 사정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었고 또한 그가 기관사를 설득시킨 영향도 컸다.
시베리아 황단열차를 이용하는 승객들의 모습들은 다양했다. 원래 러시아의 백인부터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과 같은 중앙아시이인, 우리 한민족과 같은 혈통을 가진 몽골인들, 또는 우리 민족의 고난시절 조국을 떠나 만주 벌판을 떠돌던 조선족들, 그리고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 중국인들 등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우리와 함께했던 젊은 청년 중에 한국인과 흡사한 모습의 청년이 있었다. 한국말은 전혀 못하지만 꽤나 살갑게 대해줬다. 그러나 우린 그가 불안했다. 블라디보스톡 공항에서의 상황 때문이었다.
우리와 모양이 흡사한 동양인을 보면 혹시 북한 사람이 아닌지, 얼마 전 탈북한 북한 여성들의 집단 입국을 납치라고 항의하며 보복하겠다는 방송을 접한지가 불과 며칠 전이라, 혹시 한국인을 납치하러 다니는 북한인은 아닌지 신경이 쓰였다.
블라디보스톡 공항에서의 긴장감이 쉽게 사라지 않는다.
타야 할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떠난 지 오래되었고 자정이 훨씬 넘어 도착한 블라디보스톡 공항에 남겨진 아들과 나, 기다린다는 공항 직원은 보이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는데 "북한 국경 인근의 한국인은 멀리 국경에서 떠나라"는 영사관에서 보낸 문자를 반복 접했을 때의 불안감과 긴장감, 그때의 여운은 아직도 생생하고 혹시 그런 청년이 아닌지 되레 불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