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여행(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
우린 역사로 돌아왔다.
기차를 타기 위해서는 역사내에 입구가 있는 줄 알았다. 입구로 문을 열고 들어가자 외부와 완전히 개방되어 있었다. 승차표가 있으면 구태여 역사 안으로 들어 올 필요가 없었다. 역사에서 대략 100m쯤의 거리에 길고 높은 육교가 있었다.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높은 육교로 여행객들이 띄엄뜨엄 가고 있었다. 우리도 시베리아 열차를 타기 위해서 그들이 가는 길을 뒤 쫓아 갔다.
99번 열차!
애초에 블라디보스톡에서 탔어야 할 횡단열차였지만 우리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이유로 예상에도 없는 이곳 하바롭스크까지 오게 되었고 이제 초조하게 열차를 기다리게 되었다. "새로 발급받은 승치표까지 있으니 별 문제는 없겠지!"라고 안심하려고 했지만 승차를 하고 우리가 예약한 자리에 가서 앉아야만 모든 것은 끝나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이틀 간의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조금이라도 보상을 받게 되는 것이었다.
신비하게만 느껴졌던 시베리아 횡단열차!
그놈을 한번 타보자고 뛰어들었던 멋진 기대는 산산이 부서지고, 공포와 실망만 안긴 채 99번 기차를 타기 위해 육교 위를 걷고 있다.
기차는 하바롭스크역에서 정차를 하였다. 제복을 입은 여성 승무원이 먼저 내리고 이어서 승객들이 쏟아져 내렸다. 어떤 사람은 여행용 가방을 들고, 아니면 배낭을 둘러메고, 어떤 이는 빈 몸으로 내렸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곳이 목적지인 사람들과 잠시 내려 바람을 쐬거나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서 잠시 내렸다 다시 기차를 탈 사람들 이었다. 내리는 옆에는 새로 타야 할 사람들이 짐을 가득 끌고, 메고 줄을 서기 시작했다. 왜 기차에 올라타지 않고 기다릴까?
그렇게 해야 되나 싶어 우리도 줄을 서서 기다렸다. 열차의 출발시간 30분을 남겨놓고 여성 승무원은 탑승구 앞에서 승객들의 검표를 하고 탑승을 시키기 시작했다. 줄은 점점 줄어들고 승무원에 가까이 갈수록 "이 기차를 타야 되는데, 혹시나 이 기차를 못 탄다면 블라디보스톡에서 이곳까지 항공기로 달려온 것도 허사가 된다. 그리고 천상 이 여행은 접어야 된다."란 불안감이 은근히 남아 있었다.
드디어 우리의 차례가 되었다. 하바롭스크에서 새로 발급받은 승차권을 승무원에게 보여줬다. 승무원은 승차권과 우리들의 모습을 번갈아 쳐다보다 무어라 말을 한다. 그러나 무어라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씨브랄느므쌔끼^♡?@♡#^~/()?!@:;*"
억세고도 항의 하듯이 말하는데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분명한 것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 뿐이었다. 아들은 영어로 또는 구글 번역기로 소통을 하려 하나 안내원도 영어는 한마디도 못하는 것 같았다. 인터넷은 세월아 네월아 물어봐도 대답이 없고, 속도가 느리다 보니 중간중간 데이터 손실이 되어서 그런지 어쩌다 돌아오는 대답은 동문서답이었다.
기차가 떠날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왜 우리는 승차를 시키지 않는지 이유도 모른 채 서 있고, 우선 나머지 승객들을 탑승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우리만 남았다.
급한 김에 아들은 이야기한다.
"아빠! 어찌 됐든 이 기차를 타야 돼. 문제는 그 후에 가면서 해결해도 되잖아."
하면서 자기가 빨리 역에 가서 새로 표를 끊어 온단다. 그 말이 맞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일단 이 기차를 타야 되었다.
나는 내가 타야 할 차량의 탑승구 앞에서 짐을 곁에 두고 기다리고, 아들은 높고도 긴 육교를 뛰어올라 하바롭스크역으로 달려갔다. 육교를 내려서도 제법 먼 거리의 역사,
나는 초조하게 아들이 오기를 기다리는데 한편으로는 속에서 부하가 치밀어 올랐다. 왜 우리가 이런 고생을 해야 되는가?라는 분노였다. 러시아의 항공기가 수 시간 연착되어 기차를 놓쳤고, 그놈을 타고자 예정에 없던 항공기를 타고 이곳까지 왔는데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어서 이런 신세가 되었나 생각하면서 끓어오르는 분노였다. 그것은 시베리아 항공사에 대한 분노였고, 러시아 철도회사에 대한 분노였다. 또한 러시아에 대한 분노였다.
시간을 보니 어느새 기차의 출발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여행용 가방 속에 깊이 넣어 두었던 시베리아 횡단열차 티켓을 꺼냈다. 국내에서 인터넷으로 예약하고 발급받은 티켓이었다. 하바롭스크에서 티켓을 새로 발급받고 "이것은 필요 없겠구나!" 하며 깊이 넣어 두었던 그 티켓을 승무원에게 보여주며 한국말로 도대체 뭐가 문제냐? 고 화를 내며 다그쳤다.
승무원은 그 티켓을 보며 옆 차량의 여자 승무원에게로 갔다. 둘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진지하게 대화를 나눴다. 조금 후에는 기관사인 듯 모자와 제복을 입은 50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승무원과 대화를 하더니 그 남자는 여자 승무원을 심하게 나무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담당 승무원이 내게 다가와 왜 이제 이것을 보여주냐? 는 듯 한 표정을 지으며 아들을 빨리 데리고 오라고 토막 영어로 말을 한다.
"Son! Call, Son! Call"
어느새 시간은 흐르고 기차 출발시간이 10여분이 지나갔다.
"뿡~~~ 뿡뿡~~~"
기차는 떠난다 기적을 울려대고, 여자 승무원은 아들을 빨리 데리고 오라 급한 듯 손짓을 하는데, 나는 이 짐만 놔 두고 멀리 떠날 수가 없었다. 육교를 오르내리며 맞은편을 바라보고 아들이 오기를 목 빠지게 기다렸다.
기차가 떠나면 끝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다. 따라서 육교에 올라 마냥 기다릴 수가 없었다. 기차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붙잡아 두어야 했다.
따라서 기차와 육교를 오고 가기를 수차례,
저쪽 육교 끝에서 아들이 헐레벌떡 계단을 뛰어 올라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빨리 오라 손짓을 하고, 나는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승무원한테 아들이 지금 오고 있으니 잠깐만 기다리라는 손짓을 하며 뛰어갔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일단 "99호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탈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