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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우리는 왜 3류 국가여야 하는가?

최고의 여행(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

by 정달용

8. 우리는 왜 3류 국가여야 하는가?


☞ 2016.09.27(화)


하루가 저문다. 우리나라 저녁노을 같지는 않지만 전형적인 시골의 평범한 저녁노을이 지고 있다.


단조롭고 끊임없이 지속되었던 치타까지의 경치에서 제법 초원과 나무들의 울창함이 우리의 어느 시골 마을과 비슷하다. 우리의 80년대 과거의 모습이라 할까, 제법 낮엔 뜨거운 햇빛이었다. 오히려 우리 사는 곳보다 더 더웠던 하루였다.


이제 낯설었던 열차 내에서의 여러가지 상황들을 여성 승무원에게 묻기도 하고 함께한 젊은이들에게서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대한 이야기도 들으면서 내게 필요한 궁금한 것들을 대부분 알게 되었다. 안심이 되었다.

침대는 자기에게 정해진 자리가 있지만 6명의 승객들은 조그만 테이블을 함께 사용하며 따라서 2층 예약 승객도 잠잘 때를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는 1층 좌석 3자리에서 무료한 시간을 함께 보내고, 6명 중 누구든 피곤한 시람은 2층 침대의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올라가 잠을 자곤 했다. 6명이 서로 타고 내리는 곳은 다르고 생긴 모습도 다르지만 열차에서 함께하는 동안은 어쩔 수 없이 서로 의지하며 생활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차를 마실 수 있는 뜨거운 물은 항상 준비되어 있었고 때로는 그 팔팔 끓는 물을 컵라면에 부어 먹기도 했다. 6명의 공동생활공간은 각자가 가져간 차나 음식들을 나누어 먹는 것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졌고 소통이 잘 않되지만 토막 문자로 아니면 표정으로, 손짓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해 전달했고 어느 나라 사람이고 어디까지 가며 무엇을 하고 사는지 등의 궁금한 것을 묻고 대답하며 무료한 시간을 보낼 수가 있었다.



지금도 열차는 달린다. 민가는 거의 보이지 않는 넓은 초원, 땅이 넓다 보니 기어 다니는 땅 위의 들짐승들이나 날짐승들도 보이지 않고, 게으르면 옆의 나무에 치어 햇빛을 가릴라 위로만 위로만 바쁘게 자라고 있는 자작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대부분이 산으로 둘러싸인 우리 산하와는 달리 넓은 벌판에 어쩌다 보이는 낮은 구릉, 이런 벌판이 우리니라에 있었다면 과거 그토록 배고프게 살진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도 해본다. 과거 천여 년 전 우리 조상이 누비던 곳 만주벌판과 주인 없이 널려있던 시베리아의 황량한 평원을 바라보는 나의 심경은 씁쓸하다.

우리 민족이 조금만 더 큰 야망을 가졌더라면 반도의 민족이 아닌 큰 대륙을 아우를 수 있는 한민족이 되었을 텐데란 생각을 하게 된다. 어느 민족은 1만 km도 족히 넘는 곳까지 동으로 동으로 정복하며 진출한 나라도 있는데, 제 머리맡도 지키지 못하고 반도의 반쪼가리에서 질시와 탐욕에 매몰되어 있는 우리 자신을 씁쓸하게 바라본다.


내가 철이 들 무렵인 10대 후반 역사나 세계사 과정을 수업할 때, 또는 좋아하는 책을 읽다 보면 종종 현재 우리의 처지를 미, 일, 중, 러 주변 4대 강국에 둘러싸여 있는 관계로 이러한 국제정세 속에서 힘 없는 나라인 우리민족은 나라의 보전을 위해서는 슬기롭게 헤쳐 나가야 한다는 것을 가르쳤고, 배우는 사람이나 가르치는 사람들, 또는 사회의 지도자들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곤 했었다. 심지어는 사회의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이 스스로가 약소국이라 여기는 모습에서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때마다 젊은 나는 그 말에 공감할 수가 없었다. 왜 우리는 제국주의 시대는 물론이고 현재까지 나라의 운명을 타국에 의탁해야만 하는 것인가? 원인은 우리에게 있다. 우리가 못났기 때문에 제국주의 시대에 식민지가 된 것이 아닌가? 왜 우리는 제국의 국가가 되지 못했는가? 그건 오롯이 우리가 힘을 키우지 못한 것이요, 세상의 흐름에 뒤떨어졌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3류 국가여야 하는가? 만주벌판을 누비던 선조의 기상과 같이 4강의 줄타기가 아닌 4강을 어우르는 나라는 될 수 없는 것인가?"라고 나 자신에게 묻곤 했었다.




이제 어둠은 시작되고, 고기잡이 갔다 돌아오는 중이라는 젊은 친구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그들 동료 중 한 아가씨들의 기타 치는 모습, 그리고 같이 따라 부르는 모습들에서 나의 옛 젊은 청춘이 떠올려진다.


해가 지고 저녁이 되자 조명이 어두워서 무엇을 읽을 수 없다. 내일부터는 이를 참고해야겠다. 주간에는 2층 여행객과 같이 이용해야 하는 내 침대는 좀 불편함이 있긴 하다. 4명이 같은 일행이라면 좋겠다.


종일 펼쳐지는 모습은 넓은 초원과 낮은 구릉뿐,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예상 못했던 건전지 충전 문제와 서비스 불통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곳은 시베리아 벌판으로서 중간중간 인구가 밀집된 곳에서나 인터넷이 될 뿐, 그 외의 다른 곳에서는 모든 통신이 안 된다. 우리나라 같으면 전국 어디에서나 인터넷은 물론, 음성, 영상 등 데이터도 불편 없는 세상에서 살지만 엄청 넓은 영토를 소유하고 있는 러시아의 시베리아 벌판에 살고 있는 소수의 인구에게까지 좋은 서비스가 지원되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아직까지 우리 같은 여행객들에게 당혹스럽게 한다. 또한 건전지가 쉽게 소모되는 것도 경험에 의해서 터득했다.




바이칼 호수의 저녁노을

울란바트르에서 젊은 친구들이 내렸다. 그들 중 한 명이 영어를 할 줄 알아 큰 도움이 되었었다. 이곳 러시아는 자국어만이 사용해서 영어 등 외국어는 거의 쓸모가 없다. 따라서 외국에서 온 여행객들을 당황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젊은 친구가 아들과 대화하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제 그 친구가 떠났지만 그동안의 대화로 많은 정보를 알게 되었으니 별 걱정이 안 된다.


이제 그토록 보고 싶었던 바이칼 호수가 어둠이 시작되는 지금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원래 아들이 99호 열차를 선택한 것도 바이칼 호수를 낮에 보기 위한 것이었는데 착각을 한 모양이다.


2층에 잠자리를 하던 친구들이 떠나자, 침대 생활이 한가로워졌다, 주간에는 그들과 같이 생활해야 되었기 때문에 많은 불편함이 있었다. 오늘 저녁은 나름대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2016.09.28(수)


아침 6시경 눈을 떴다.


지마역이다.

새벽 공기가 상큼하다, 건전지 충전을 하고, 10시경이 되어 아들과 식당에 갔다. 계란 후라이에 소시지를 잘게 썰어 넣은 것으로 식사를 하고 캔맥주 한 병을 둘이 나누어 마셨다. 또 하루가 시작이다.


어제저녁 울란우테역과 바이칼호수를 지나 이루츠크역에서는 많은 승객들이 내리고 탔다,


어제 젊은 친구 일행 중 여자 2명은 이루츠크역에서 내렸다. 그동안 익혔던 일행들이 거의 다 떠났다. 그렇지만 이제 적응이 되어 어쩜 우리가 이 열차에서 주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어제저녁엔 고민 끝에 머리를 감기로 했다. 페트병에다 물을 밭아서 머리를 감으면 되겠다 싶어 시도를 해봤다 그러나 아침에 머리가 가려운 것은 마찬가지이다.


지금까지 많은 승객들이 타고 내렸는데, 하바로스크역에서는 온통 러시아 백인들이더니, 울란우테에서는 몽골인, 이르쿠츠크에서는 중앙아시아인들의 모습을 한 승객들이 타고 내린다.


바로 역사를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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