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여행(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
☞ 2016.09.29(목, 새벽)
마치 천리를 달린다는 천리마가 철거덕 철거덕 쉼 없이 달리다가 새벽녘에 잠시 숨을 돌리기라도 하듯 열차가 멈춰 섰다. 참으로 길고도 긴 여정이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생페테르브르크까지 장장 10,000km. 서울서 부산까지 25번을 오가는 거리, 시간으로 8시간의 시차면, 지구의 하루 시차가 24시간이니까 1/3의 시차요, 지구 한 바퀴가 40,000km라니까 지구의 1/4을 달린 결과라, 실로 대장정의 모험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까 지구가 생각했던 것보다 작다는 느낌이 든다. 이것이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소득일 수가 있겠다.
☞ 2016.09.29(목, 저녁)
서쪽으로 서쪽으로 달리고 달리고, 얼마나 달렸던가?
5일간을 밤낮으로 달리고 달려 지금은 옴스크를 지나고 있다.
끝도 없이 계속되고 있는 초원과 일자로 뻗은 나무들, 아직도 모스크바까지는 이틀을 더 가야 한다. 오늘은 옴스크에서 내리는 젊은 친구와 작별인사를 했다. 하바로스크에서 학교를 다닌다는 한국인 모습의 우즈베키스탄 청년이다.
그는 우리와 함께하는 6인실의 여행객은 아니었다. 바로 옆의 6인실에 자리를 하고 있는 청년이었다. 그는 자신과 닮은 모습을 한 우리에게 자주 찾아왔다. 그리고 러시아어로 대화를 하려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깊이 있는 대화가 안 되고 단절되었다. 우리도 그 젊은 친구도 답답한 건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자신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살았던 곳에서 온 여행객들을 만나 반갑기도 하고 궁금한 것도 많은 것 같이 수시로 와서 말을 건넸다. 원양어선을 타고 고기잡이 갔다 오는 러시아의 젊은 청년도 가고 없어 전혀 의사소통이 안 되었고, 한편으로는 블라디보스톡 공항에서 문자메시지의 여운은 아직도 남아있었다. 끝내 그 젊은 우즈베키스탄의 동양인 청년과는 많은 여운을 남긴 채 옴스크역에서 아쉬운 작별을 해야 했다. 그는 선물로 푸른색 무늬가 들어간 사기그릇 하나를 선물로 준다. 우린 줄 것이 없어 고민을 하다 1000원짜리 지폐와 500원짜리 동전을 기념으로 줬다. 그리고 헤어질 때 아쉬워하던 그 모습이 지금도 선하며,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제 모스크바가 얼마 남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어처구니없게도 하바롭스크까지의 항공기 티켓과 모스크바까지의 중복된 기차요금은 어떻게 보상받을 것인가? 승무원에게 얘기해도 소용이 없어 생각 끝에 모스크바 도착 즉시 역장을 만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말로는 통하지 않고, 내가 글로 쓸 테니 아들이 영어로 번역해 보라고 했다.
“존경하는 역장님께!
저희 부자는 러시아어를 모르고 영어와 구글번역기로 어렵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한국의 여행객입니다.
우리의 계획은 한국의 인천공항에서 항공기를 이용하여 블라디보스톡으로 와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모스크바를 여행하는 코스였습니다.
그러나 시베리아 항공기(7s)가 5시간이나 연착되는 바람에 사전 예약했던 시베리아 횡단열차(99번
2016.09.24 23:10발)는 탈 수 없었고, 대안으로 하바롭스크로 가는 항공기를 이용하여 중간 기착지에서 승차하기로 했습니다. 하바롭스크역에 3시간 전 도착하여 역무원에게 예약한 티켓을 보여주니 승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당황 끝에 자동발급기에서 재발급받아 보여주니 가능하답니다. 안심하고 승차시간이 되어 열차 승무원에게 재발급받은 티켓을 보여주자 거꾸로 승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애원도 해봤지만 반복된 답변에 오랫동안 준비한 여행을 포기할 수 없어 급히 새로 티켓을 발급받아 승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초기 발급받은 티켓을 승무원에게 보여주자 왜 이제 보여주냐? 고 반문합니다. 도대체가 두 승무원들의 반대되는 대답에 외국 여행객으로서 당혹스러웠고, 어처구니없게도 두 번의 티켓을 발급받고서야 예정된 여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존경하는 역장님!
우리는 어렵게 모스크바까지 왔습니다만, 이곳에 오는 동안 손실된 티켓을 환불받을 수 있는 권한은 역장님 밖에 없을 것 같아 감히 찾아뵙습니다.
한국에서 온 여행객 부자가”
나는 천신만고 끝에 "99번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한숨을 돌린 후 그동안의 손실 보상 문제를 고민해 봤다. 시베리아 항공기의 지연으로 시작된 물적, 정신적 손실을 너무나 컸다. 하지만 이곳을 러시아였다.
그러나 모스크바 도착하기 전 총괄 관리하는 남자 기장의 제안으로 “60%의 손실보상을 해 줄 테니 이의 하지 않는다”는 확인서를 쓰고 마무리했다.
"99번 시베리아 횡단열차"에는 차량의 중간쯤에 식당 전용칸이 있었다. 우리는 다른 차량의 모습도 궁금하기도 하고 식사나 기타 다른 것으로 요기도 할 겸 통로를 따라 몇 번 오고 간 적이 있었다. 기차 안에는 많은 승객들이 가득 찼고, 또한 생긴 모습도 다양했다. 그 승객 중에는 우리처럼 여행을 가는 여행객들도 있었지만 생활을 위하여 오고 가는 사람들도, 공부를 위해 이 기차를 탄 사람들도 있었다. 통로를 이용하여 다른 차량을 통과할 때면 혹시 우리 한국 사람들은 없나 살펴보았다. 여태껏 이 열차에 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렸지만 한국사람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날도 간단한 음식으로 배를 채우기 위하여 식당 전용칸으로 가고 있는데 누가 말을 건다. "혹시 한국분 아니세요?" 오랜만에 들어보는 한국말이었다. 순간 귀가 번쩍 뜨여 고개를 돌려보니 아들 뻘쯤 되어 보이는 젊은이 둘이 인사를 한다.
반가웠다. "한국인 납치 조심" 문자에 항상 마음 졸이고 있었는데 한국의 젊은 청년을 만나니 더욱 반가웠다. 그들도 혹시 이 열차에 한국인이 있나 오고 가면서 살펴봤던 모양이다. 그리고 우리가 한국인이란 것을 알고 언제 인사를 해야지 하고 기회를 찾던 중 이제 마주친 것이다. 그들은 다른 일행 한 명이 또 있다며 인사를 시킨다.
여행 계획을 물어보니 두 명의 젊은 청년들은 3달의 기간으로 모스크바를 구경하고 폴란드를 경유해서 서유럽으로 간단다. 다른 한 젊은 청년은 동유럽에서 서유럽까지 100일 동안 각국을 누비고 다닐 계획이었다.
대견스러웠다, 우리 젊은이 들이 이 정도의 배포를 가지고 세계를 누비고 다니는 것이 대견하고 든든했다.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구나. 내가 저들 만할 때 기껏해야 좁은 국토가 내 세계의 전부였었다. 전국이 일일생활권이란 것이 우리에겐 대단함이었고 1억 달러 수출, 10억 달러 수출, 100억 달러 수출 달성이 대단한 기념이었다.
이제 우리 젊은이들도 좁은 한국땅이 아니라 전 세계를 누비는 세계의 젊은이가 된 것이 마음 뿌듯하다.
이후 모스크바역에서 그들과 헤어졌다. 그들은 우리의 미래이고 든든한 자산이었다. 옛날 못 낫던 우리 선조들의 좁은 울타리를 넘어서고, 모쪼록 멋진 여행하고, 많이 배우고 오길 마음속으로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