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독서
누구나 1년에 한 살씩 더 먹지만 세월의 눈금은 그렇게 딱 떨어지지는 않는 듯싶다.
보통 때는 1년에 1년만큼씩 자라지도, 늙지도 않는다.
그러다 어느 때가 되면, 내 경우 중2에서 중3 사이, 1년에 13센티가 자랐다.
또 나이 들어서는 제법 젊어 보인다 싶다가도 어느 해 아프고 나니 갑자기 네댓 살은 더 들어 보인다.
분명한 건 거죽이 젊어 보이건 늙어 보이건 상관없이 생각만큼은 몸뚱어리만큼 시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국적 불문에 만인 공통이다.
어쩌면 이런 연유로 해서 나이가 들면 노파심이라는 게 자리하는가 보다.
내가 아는 바로는, 내 경험에 비추어.. 등등으로 훈수하고 간섭하려 든다.
그럴 때마다 내가 나서기에는 세상이 너무도 달라졌음을 상기하고 어금니를 꽉 깨물고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침묵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거리 두고 외면하는 게 능사인가 하는 생각이 스친다.
생각?
김영민 교수(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2019)는 ‘생각의 무덤은 텍스트고 그 텍스트가 묻혀 있는 곳은 콘텍스트’라고 했다. 또 누군가는 ‘작가의 생각이 끝나는 지점에서 독자의 상상은 시작된다’고 한다. 이 두 가지를 연결하면 결국 텍스트를 살려내는 힘은 읽는 이의 상상력에 달려있다.
상상력의 엔진은 호기심이다.
호기심은 익숙함에 불편해하고 지루함을 떨쳐내는 원동력이다.
그리고 그 현상은 부지런함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생각의 발단은 독서다.
노화를 더디게 하는 온갖 종류의 건강 보조 식품이나 영양제, 화장품, 장신구, 의상 등이 넘쳐난다. 이것들을 먹고 마시고 걸치며 찍어 바르면 분명 호적보다는 몇 살 더 어리게 볼 것이다. 그래도 그의 몸동작은 오늘 하고 그가 쓰는 단어는 올드하며 그 생각의 편협함은 감출 길이 없다.
소나무의 껍질이 갈라지고 검버섯이 덕지덕지 앉아도 그 푸르름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뿌리에서부터 빨아들이는 생명력에 있다.
늘어진 가지마다 받아들이는 햇살에 있다.
온몸으로 마주하는 바람결에 있다.
나이 들어가며 염려해야 할 것은 뻣뻣해지는 몸뚱이가 아니라 딱딱해지는 생각이다.
그 생각에 수분을 공급하는 딱 두 가지는 여행과 독서다.
여행은 가슴 떨릴 때 떠나봐서 코로나 때문에 무릎이 떨리는 지금은 자제 중이다.
다행히 눈은 조금은 침침하지만 아직은 읽을 만하다.
생각을 조금은 더디게 늙게 하고 싶은데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