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무게

어르신 알레르기

by 찾다가 죽다

이따금씩 마트에 장을 보러 간다.

시식 코너를 지나칠 때면 예외 없이 ‘아버님’이나 ‘어르신’하는 호칭과 함께 불러 세운다.

짐짓 못 들은 채 지나치는 까닭은 시식도 불편하지만 그보다는 호칭이 맘에 걸리기 때문이다.

나는 일면부지 직원의 아버지도 아닐뿐더러 어르신이라는 극존칭에는 더더욱 닭살이 돋는다.


아마도 내 연배를 전후해서 어르신이라는 호칭에 만족할 만한 사람은 드물지 싶다(내 생각이다)

이유인 즉, 어르신이라 함은 조선 시대나 어울릴 법한 극 존칭의 다분히 권위주의적 서열주의가 배어 있기 때문이다. 이따금 보는 드라마의 정치계나 조폭 세계에서 처럼 다분히 아랫사람의 아부와 위 사람의 교만이 조화로울 때만 그럴싸하게 들린다.

문제는 부르는 이의 목소리에 아부는커녕 비아냥이 넘쳐난다는 느낌 때문이다. (나 만의 비뚤어진 생각이라면 이 또한 양해를 구한다.) 마치 어르신이라 부르고 꼰대라 해석당하는 듯싶다.


그러던 차에 ‘어른’이라는 단어가 산뜻하게 다가온다.

문 헌법 재판관의 장학 후원자로 김장하 선생이 재 소환되면서부터다. 그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 ‘어른 김장하’가 다시 각광을 받으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어른’이라는 호칭을 편안한 존경과 예우로 대한다.

기사를 찾아보니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해당 연령자를 직접 부를 때, 뭔가 혜택을 드릴 때 주로 어르신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라고 했고 서울시는 2012년 공모를 거쳐 노인이라는 용어를 어르신으로 바꾸기로 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어 "고령층을 너무 높이는 말이라 도리어 불편하다"는 반론도 적시하고 있다.


내 생각에 어르신이라는 극 존칭어는 고령자 집단을 분리시키는 단절의 의미를 갖는다.

올해 우리나라는 인구의 20% 이상이 65세가 넘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2036년에는 30%, 2054년에는 40%로 늘어날 전망이다. 다시 말해서 전체 인구를 4:1에서 3:1 나아가 2:1로 구별하는 느낌이다.

지금이야 초고령이 소수이니 구분당한다고 하겠지만 10년, 20년 뒤면 인구 절반이 초고령이다. 전체를 아우르는 호칭과 공감이 필요하다.


나이가 들면 입은 다물고 지갑은 열라고 한다.

김장하 선생이 어른으로 합당한 까닭은 그의 베풂 못지않은 인품 때문이다. 얼마 전 최재천 선생은 우리 사회에서 퇴화한 듯싶은 양심이라는 책을 내면서 공평에 이 것이 더 해져야 공정한 사회가 된다고 역설하고 있다.

고령화 사회에 들면서 남녀가 하루라도 젊게 보이려고 안간힘이다.

젊음은 발랄함이고 가벼움이다. 하지만 그래도 지키고 견뎌 내야 할 무게가 있다. 인품이나 양심… 노화로 비록 근감소는 어쩌지 못해도 지켜내야 할 노년의 무겠지 싶다. (이는 AI에게서는 도저히 구할 수 없는 성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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