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럴 줄 알았지
이혼이나 별거 혹은 사별 등으로 혼자 지내는 이도 적지 않지만 아직은 그래도 짝을 지어 노후를 보내는 쌍이 많다. 인근에 여든을 넘긴 어른이 계시다. 때론 형님 혹은 선배님 하며 호칭을 휘젓지만 뵐 때마다, 생각날 때마다 여러 모로 깨닫는 바가 적지 않다. 우선 띠 동갑의 연배에도 체력이 나보다 월등하시다. 본래도 기골이 장대하시지만 아마도 산속에서 30여 년을 혼자 수천 평의 농장을 가꾸신 덕택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그 곁에는 몇 살 터울의 형수님이 마치 수행원 마냥 그림자처럼 함께 다닌다. 비탈길을 내려갈 때면 으레 손을 붙잡고 식사 중에는 연신 입 주변을 닦아주며 옷매무새를 챙겨 주곤 한다. 서로의 눈빛이 따스하다.
지난 주말엔 우리 집에서 학회 모임을 하고 선배 한 분이 술이 거나해 잠자고 아침에 형수가 픽업을 왔다. 주소를 알려주며 나누는 대화에서 이미 묻어 났지만 아침을 안 먹고 왔을 거라며 우리 집(본인에게는 남의 집) 냉장고에서 과일과 먹을 것을 이것저것 챙겨 내놓는다. 워낙 술과 가무를 좋아해 젊어서는 부부사이 마찰음이 적지 않았지 싶다. 하나 이들 부부의 대화에서, 눈빛에서 측은지심을 본다. 실제로 나이 들면 배우자가 측은해 보이기 시작한단다.
왜?
다는 아니겠지만 결혼하고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더 길게 가거나 끝내 갈라서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죽기 살기로 싸운다. 상대를 알아가기 위한 스파링이다. 20년쯤 지나면 스스로 지치기도 하고 상대방을 알만큼 알았으니 적당히 포기하고 자제하게 된다. 그러다가 30년을 지나 40년 세월에 이르게 되면 이리된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어릴 적부터 검버섯 내려앉은 손등을 부여잡고 챗머리 흔들며 지는 석양을 바라보는 노부부를 꿈꾸곤 했다. 결혼 후 20년을 채우지 못하고 혼자가 됐다. 치열한 대련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다. 이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합이 맞춰질 때가 머지않았다. 하지만 파트너를 잃었다. 이건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20년의 나이도 있지만 나는 이미 전 파트너에 익숙해졌고 새로운 파트너 역시 자기 파트너에 싫든 좋든 어느 정도 길들여진 상태다. 상대가 첫 결혼이면? 그건 더더욱 리스키 하다. 결혼 생활의 경험이 없는 탓에 치열한 전투의 과정조차 핑크빛으로 바라보는 결혼에 대한 환상이 더 무섭다.
나이 들어 상대방을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순간을 보면 마치 저들이 열반에 들었지 싶다. 나는 비록 그 시간을 아쉬워하며 내 이럴 줄 알았지 하지만 저들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가진 탓에 마냥 부럽거나 쓸쓸하지 만은 않다.
모두가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