隱者의 人生三樂
공자는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친구가 있어 멀리서 찾아오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사람들이 나를 몰라주더라도 화를 내지 않으면 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라며 이 세 가지가 인생의 낙이라고 한다
또 맹자는 부모가 모두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째이고, 위로는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아래로는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둘째이며, 셋째는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을 군자삼락이라고 말하고 있다. [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 仰不愧於天, 俯不?於人, 二樂也. 得天下英才而敎育之, 三樂也.]
내게도 세 가지 낙이 있다. 이름하여 은자삼락이다. 은자라 함은 은퇴한 사람이니 그리 칭하는 바요 삼락이란 첫째는 챗지피티요 둘째는 유튜브이며 셋째로는 넷플릭스다.
여기서 은자란 은퇴한 자로 감히 공맹과 같은 아들 자가 아닌 놈 자일 뿐이다.
기업에서나 대학에서 물러나고 나면 이것저것 아쉽지만 그중에 으뜸은 생각을 나누고 의논하며 모르는 걸 묻고 배울 데가 드물다는 사실이다. 은퇴하고 한두 해는 이웃들을 모아 같이 책도 읽고 영어 공부도 하고 또 틈나는 대로 텃밭을 가꾸며 어쭙잖은 전원생활에 몰두했다. 하지만 오랜 습관인지 개인 성향인지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고 글이나 논문을 끄적거리곤 한다. 그럴 때마다 관심 분야가 비슷할 만한 주변을 두리번거려보지만 있을 턱이 없다. 그러던 차에 챗지피티를 만난다. 처음엔 조금 편리한 검색 포털쯤 되겠거니 했는 데 웬걸 일신우일신이다. 관성을 이기지 못해 얼마 전 출간한 책(AI와 학문, 컴북스 2024)에도 썼듯이 처음에는 똘똘한 석박사 과정 몇을 옆에 둔 느낌이었다. 머잖아 세부 전공이 같은 동료 교수를 만난 듯싶더니 이내 돌아가신 지도 교수님이 살아오신 듯 놀랍고 어리둥절하다. 때로 멀리서 친구가 찾아온 듯 또 때로는 천하의 영재를 모아 가르치는 듯싶으니 낙이 아닐 수 없다.
유튜브는 내게 더할 나위 없는 친구다. 아침저녁 산책길에 이어폰으로 동행하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국제, 오락을 접한다. 이 친구와 잘 지내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습관적 유혹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소위 말하는 확증편향의 덧을 씌우는 알고리즘을 이겨내야 한다.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마치 관성을 거스르는 기분이다. 어느 틈엔가 왼쪽 끝으로 나를 끌어다 놓곤 한다. 정치 뉴스를 들을 때나, 책을 구입할 때 심지어 일상 용품을 몇 번 검색해도 어느새 그 동네로 몰고 간다. 좌로도 우로도 위로 아래로 치우치지 않으니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을 정도는 아니나 누구랑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고 흥분하지 않으며 파당을 짓지 않을 수 있으니 크게 부끄러울 일은 드물다.
끝으로 넷플릭스다. 며칠 전 마침 12세 이상 관람 가에 비도 오고, 손자도 좋다기에, 아들, 손자 녀석과 영화를 한편 봤다. 아들 넘이 얼마 만에 영화관에 오신 거냐는 물음에 손꼽아 보니 가히 20년은 족히 지났지 싶다. 그렇다고 영화를 싫어하느냐? 천만에. 내 유일한 오락은 영화 관람이다. 다만 공공장소가 아닌 집에서 즐길 뿐이다. 영화에는 모든 세상이 들어 있다. 때론 여행을 다녀온 듯, 또 어떤 영화는 책을 한 권 읽은 듯 그렇게 세상과 상상 속을 넘나 든다.
아마도 데이비드 소로가 요즘 숲 속으로 떠났다면 이리 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