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 vs 권위주의
2019년 9월 영국 국영방송 BBC는 오늘의 단어로 ‘꼰대(KKONDAE)’를 선정하고 이를 ‘다른 사람은 그르고 자신이 항상 옳다고 믿는 나이 많은 사람’이라는 정의와 함께 신조어로 소개한 바 있다.
같은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보다 앞서 5월에 이미 ‘거들먹거리는 노인(condescending old person)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한 바 있다. 그리고 이들을 ’ 젊은 사람들로부터 의심의 여지없이 복종을 기대하는, 비판은 빠르지만, 자신의 실수는 절대 인정하지 않는,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에게 보복을 가하는 사람‘등으로 쓰고 있다.
우리가 어릴 적, 꼰대는 선생님에 대한 학생들 사이의 은어였다.
그러던 것이 근자에 들어서는 모든 나이 많은 사람이 꼰대로 분류된다.
초고령 사회를 목전에 두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나이 많은 사람이란 몇 살 이상일까?
또 왜 나이가 들수록 자신만이 항상 옳다는 아집에 빠지는 걸까?
이런 현상은 정치, 종교, 학계를 불문하고 전방위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이는 자연스러운 노화의 한 현상이다.
단지 그것이 오늘날 심하게 노출되고 비판이 대상이 되는 건 세상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스러운 건 그 달라짐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선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즉, 권위주의가 와해되고 있는 징후라는 것이다.
기업을 비롯한 많은 조직이 직급을 나타내는 호칭을 줄이거나 없애려고 노력하고 있다.
’ 프로‘ 혹은 ’님‘자만 붙여서 서로를 호칭한다.
직급에 따라다니는 권위주의를 벗어나기 위함이다.
더욱이 우리의 조직 구조는 연공서 열과 연관이 깊어 직급은 곧 나이를 연상시키는 문제가 있고 이 나이는 유교적 가치관 하에서는 절대적 힘을 갖기 때문이다.
정보의 과부하, 시간의 가속화로 말을 짧게 하는 축약어 현상도 권위주의를 해체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코로나19라는 팬데믹이 가져온 비대면 소통은 권위주의의 그늘을 일거에 거둬내고 있다.
권위주의가 사라지는 현상은 매우 바람직하다.
하지만 그로 인해 권위 그 자체가 실종되는 현상은 매우 우려스럽다.
권위만 남기고 권위주의를 극복할 방안은 없을까?
권위주의가 문화와 제도에 의한 강요라면 권위는 인정과 수용에 의한 자발적 행위다.
결국 주니어보다는 시니어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안티 에이징(anti-aging)은 틀린 표현이다.
누구도 세월을 거역할 수는 없다.
잘 익은 과일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염색이나 화장 같은 지나친 방부제는 열매를 썩게 만들 뿐이다.
유연한 사고를 하는 시니어 곁에 더 많은 주니어가 모이는 건 아직 시들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