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와 변화
‘다정도 병인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학창 시절에 외웠던 시구가 떠오른다.
물론 다 기억 못 해 인터넷을 뒤져보니 고려말 이조년의 다정가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이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도 오래 하면 습관이 된다는 뜻일까?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 식사를 마치고 책상 앞에 앉는다. 어제랑 같은 시간이다. 출근부에 도장을 찍는 것도, 제 때에 오나 지켜보는 상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시간은 어김없다.
그저 오랜 습관이다.
그뿐일까?
뭔가 해야 한다는, 그것도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이다.
남들만큼 사회생활을 하고 정당하게 정년 퇴임했다. 건강을 돌보며 쉬면 된다.
흔히 하는 말로 인생을 즐길 일만 남았다.
하지만 그게 쉽질 않다.
놀아보질 않아서? 놀 줄 몰라서?
...
책상 앞에 앉으면 세 가지의 선택지가 있다
첫째, 책을 읽는다.
둘째, 글을 쓴다.
셋째, 번역을 한다.
30대 초반에 잘 다니던 직장을 퇴사하고 창업을 했다.
회사 대표면 나가서 열심히 영업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
별반 일거리가 없는 직원들의 불만과 원망이 들리는 듯 귀가 간지럽다.
해서 사장실에 숨어 시작한 일이 번역이다. 물론 컨설팅이 미미하던 시절이라 딱히 참고할만한 자료가 없다는 핑계는 있었지만, 경영이 어려운 회사의 대표가 매달릴 만큼 절실한 일은 아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번역은 어느새 습관이 된 듯싶다. 물론 그때만큼 절박하지는 않다
습관은 과연 좋은 것일까? 좋든 싫든 습관이든 중독이든 일단 몸에 배면 벗어나기 어렵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위학 일익 위도 일손(爲學日益 爲道日損) 곧, 배우는 일은 날로 보태는 것이며 도를 닦는 일은 날로 덜어내는 것이라고 하니, 아무리 좋은 습관이라도 이를 벗어나려면 거의 도(道)의 경지에 이르러야 하나 보다. 그렇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일개인이 은퇴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뒤집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디지털 변혁(Digital Transformation)이 그 원흉이다.
자율근무가, 기본소득이 공유경제가 그러하다.
팬데믹으로 인한 재택근무, 재가 학습, 비대면 소통 등이 이를 가속화한다.
은퇴로 인한 개인의 변화가 DT로 인한 사회의 변화와 중첩되는 건 재앙일까? 축복일까?
난 후자라 여기고 좇아가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