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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찾다가 죽다 Nov 20. 2021

찾다가 죽다

right time, right place

 버나드 쇼우였지 아마도, 자기 묘비에 “어영부영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고 써 달랬던 사람이.

   (원문 대비 오역이라는 팩트체크는 여기서는 다루지 않음^^) 

그 많고 많은 명사들의 주옥같은 발언 중에 이런 별반 시답잖은 넋두리가 잊히지 않고 뇌리에 남아있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자신이 강하게 동조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외국 기업에 근무할 때의 기억이다. 

일본 법인에 출장 간 적이 있다. 캐비닛마다 서류함마다 온갖 종류의 철 지난 참고용 자료와 문서들로 꽉꽉 채워져 있었다. 이를 보다 못한 호주 출신의 사장이 일주일 내로 모든 서류를 몽땅 파기하라는 강력한 지시를 내렸다. 추상같은 명령에 한주일 뒤 사무실은 마치 모델 하우스처럼 깨끗해졌다. 

내심 흐뭇해진 사장이 내게 보란 듯이 사내를 안내하던 그때가 바로 내가 출장 간 시점이다. 한눈에 보기에도 말끔했다. 그러다가 무심코 샘플을 보관하는 창고 문을 열었다. 샘플 뒷줄에 보이는 서류 더미. 당황한 사장이 탕비실이며 휴게실이며 우편함 등 이곳저곳을 뒤질 때마다 쏟아지는 서류, 서류 뭉치들...

 신기한 건 직원들은 지시대로 분명 문서와 서류를 파기했다. 단지 혹시 몰라서 그 복사본들을 보관해 둔 것이다.      

 나 역시 언젠간 볼 거라는, 언젠간 필요할 거라는 아니 적어도 참고는 될 거라는 생각에 온갖 종류의 자료나 스크랩을 끼고 살았다. 하지만 필요해서 막상 찾으면 보이질 않는다. 기사에 의하면 미국 CEO들도 하루 일과의 45분을 필요한 자료나 정보를 찾는 데 소일한다고 한다. 

 하지만 어디 문서뿐이랴...     

 사실이지 돌아보면 평생을 뭔가를 찾다가 시간을 다 보낸 기분이다. 작게는 점심시간에 뭘 먹을까에서부터 크게는 배우자 선택과 옮기려는 직장이 과연 좋은 선택인지, 지금 회사를 그만두는 게 잘한 결정인지 등등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해답을) 찾다가 (결국엔) 죽게 되겠지.


 하여 오래전부터 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주위에 ‘이 담에 나 죽거든 비석에 찾다가 죽다’라고 써달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우선은 브런치의 필명으로 한다.     

 여러 차례 옮겨가며 직장 생활을 했다. 업과 종이 다를 뿐 일을 하면서 금전적 대가를 받고 그 과정에서 성취와 보람을 느끼는 과정은 대동소이하다. 하지만 이젠 은퇴자다. 아침에 일어나 서둘러 갈 곳도 골치 아픈 문제로 머리를 썩일 일도, 불편한 인간관계로 속을 태울 일도 없다.. 하지만 생각만큼 편치 않다. 뭐가 문젠가 생각하니 은퇴 생활이라는 게 난생처음이다. 퇴직하면 이럴 거라고 상상은 했지만 막상 닥치니 낯설고 시간이 지날수록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뭔가 다시 찾아 나서야 할 때다. 고령사회의 선두 세대이다 보니 주변에 참고할 만한 인물이 적어 외국의 자료나 사례까지 뒤진다. 그렇게 다시 찾기에 나선다. 이러다가 떠나겠지 하면서.  

   

친구에게 묻는다. 자네는 이제 찾기를 멈추었는가? 찾고 싶은 걸 찾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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