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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찾다가 죽다 Apr 02. 2022

팩트 체크와 믿음

과학과 비과학

요 며칠 새에 넷플릭스에서 두 편의 영화를 봤다. 아니 더 많이 봤지만 두 개의 영화가 대조되며 기억에 남는다. ‘막달라 마리아, 부활의 증인’과 ‘예수는 역사다’

제목에서 풍기듯 기독교에 관한 우호적인 스토리다.      


 전편은 예수를 추종하는 열두명의 남자 제자들과 함께 마리아가 동행한다. 

같이 걷고 노숙하며 예루살렘을 향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내 머릿속에는 예수와 제자들 온통 남자들 뿐이었으니까) 십자가 처형 뒤 마리아가 만난 예수는 물안개 피어나는 강가에서 다. 그가 마리아에게 말한다. 네가 내 증인이다.(you’re my witness) 이 말을 전해 들은 베드로와 다른 남자 제자들은 펄쩍 뛴다. 

왜 우리를 놔두고 하필 네게 나타난 거냐고.. 하지만 이내 받아들인 그들은 땅끝으로 흩어진다.  

    

 두 번째 영화는 사탕이 목에 걸려 질식할 뻔한 딸아이를 신앙 좋은 간호사가 응급 처치로 구해주면서 시작된다. 이 일로 아내는 기독교에 들어서지만 오로지 팩트만을 신봉하는 남편(시카고 트리뷴 기자)은 단지 우연일 뿐이라고 항변한다. 점점 빠져드는 아내를 돌이키기 위해 기자 신분을 십분 활용, 사계의 전문가들을 만나며 예수의 부활이 허구라는 증거를 수집하지만 끝내 받아들이고 아내와 함께 무릎 꿇고 기도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사실임을 입증하는 가족 이야기가 자막과 함께 펼쳐진다. 

그의 팩트체크는 믿음에 대한 고백으로 막을 내린다.  

   

나이가 들어가니 모든 게 또렷해지고 또한 모든 게 흐릿해진다. 

오늘도 페북에는 의사 친구의 ‘한방의 과학화’에 대한 글이 올라온다.

우리가 아는 과학은 팩트이며 진실일까? 글쎄다    

 

과학에 대한 내 생각은 이러하다.

우선 허공에 벽돌 한 장을 띄어 보자. 이게 과학(영역)이다. 

그 상단은 초(超) 과학 좌우 측면은 미(未) 과학 그리고 하단은 비(非) 과학이다. 

망원경은 지동설을, 현미경은 전염병을 극복해 내듯이 인간의 문명화는 초과학의 신비를 풀고 미과학의 영역을 넓혀가며 비과학을 좁혀 간다. 


그러나 무한대의 허공에 떠 있는 벽돌은 너무 작지 않은가? 현대 과학은 부단히 벽돌의 크기를 키워 가지만 우주 또한 멈추지 않고 팽창한다니 과학, 비과학을 단정한 다툼은.. 글 세다.     

모두가 공유하는 과학, 모두가 부정하는 비과학을 뺀 모호한 경계선에서의 다툼은 신념과 믿음의 영역이다. 4차 산업 혁명은 오히려 이 회색 지대를 정당화하는 듯싶다. 


메타버스가 그러하다. 

고등학교 때 입시 공부하면서 읽었던 영어 문장 가운데 이런 대사가 어렴풋이 생각난다.

“먼 훗날 우리가 달나라나 화성에 가서 살 때 우주 캡슐 밑에 가려질 피부 색깔의 차이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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