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Do Do Do
언제부터인진 모르지만 스스로의 삶의 방식을
하고 싶은데
해도 되면은
할 수 있을 때
하면서 살자
고 되뇌곤 한다.
하지만 막상 쉬운 일은 아니다.
먼저, 하고 싶다고 해서 다 하고 싶은 일이 아니다. 특히 내 경우 즉흥적이거나 충동적인 경향이 강하다. 특히 소비 패턴이 그렇다. 옷가지는 물론이고 전자 기기를 사는 일에서 책을 사는 것까지 너무 자주 질러놓곤 후회한다.
길게는 여행을 떠나거나 짧게는 사람을 만나는 것까지 후회는 앞뒤를 가리지 않는다.
해서 언제부턴가 정작 하고 싶은지에 대한 자기 질문을 반복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래도 여전히 후회는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다음으로 ‘해도 되면은’이다. 여기에는 법률적, 도덕적, 사회적 타당성 검증이 필요하다. 물론 경제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우선순위나 가치에 비추어서 해도 되는지가 문제다. 앞서 ‘하고 싶은데’와 결부되면 곧잘 우선순위가 뒤집히곤 하기 때문이다.
시니어의 입장에서 당혹스러운 점은 빠르게 변해가는 사회 질서와 가치 곧, 문화의 영역이다. 양성평등의 회복과 권위주의의 극복 등 우리 사회도 양적 성장을 바탕으로 질적으로 성숙해 가는 모습이 지극히 바람직스럽다. 하지만 인습이 더뎌 때로 조심스럽다.
세 번째, 할 수 있을 때.
여기에도 최소한 세 가지 제약 조건이 붙는다. 체력과 경제력과 시간이다. 시간은 있는데 돈이 없거나 반대로 돈은 있는데 시간이 없거나 한다. 점점 나이 들어가면서부터는 체력이 문제다. 누가 그랬던가 가슴이 떨릴 때 떠나라고, 다리가 떨릴 땐 늦었다고
20대 직장 생활 초반 시절, 회사에서 컨설팅을 의뢰한 외국인 부부를 모시고 제주도 관광을 간 적이 있다. 바닷가에 가고 싶다면서 막상 삼방산 밑의 별거 아닌 비탈길을 내려가지 못하는 걸 보고, 내심 ‘난 젊을 때 다녀야지’ 한 적이 있다. 그때 그들의 나이는 지금의 나보다 어리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와 핑계로 그러지 못한 것 같다.
그때는 그랬다. 지금처럼 욜로니 워라벨이니보다는 경쟁과 성장이 미덕이었으니까. 구직과 취업난 등으로 힘들어하는 요즘 세대들을 보면 안쓰럽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저들이 부럽다.
끝으로 ‘하면서 살자’ 주의다. 요즘엔 언제든, 어디든 갈 수 있는 세상이다. 여권 만드는 게 주민등록증만큼 쉽고 북한 빼고는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의 비자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막상 선 듯 나서 지지가 않는다.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혹은 하기 싫은 것은 비단 코로나 때문만은 아닌 듯싶다. 손가락 까딱 하나로 거의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세상이 마치 굳어져 가는 시멘트에 두 다리를 박고 서 있는 기분이다.
이렇듯 얼핏 보기엔 뭐든지 할 수 있는 능력 있고 자유로운 은퇴자의 영혼 같지만 기실 그렇지 못하다. 한 번만 더 생각하면 매사가 조심스럽고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게 신중함인지 나이 들어가는 소심함인지 다른 동년배에게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