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카피와 헤드라인
지역 인문학 활동의 일환으로 몇 해 째 지자체가 운영하는 평생 교육 프로그램에 강사로 참여해 오고 있다. 정년과 함께 멀리 이사 왔지만 비대면 수업인 탓에 올 해도 강좌를 개설했다. 수강생들은 대부분 MZ 내지는 베이비 부머 세대에 해당하는 지역 주민들로 세상 변화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나름 열심인 분들이다.
지난해에는 ‘터무니 인문학’이란 제목으로 강의를 진행했다. 인문이 ‘인간이 새긴 무니’라는 최진석 교수의 주장에 힘입어 터무니란 터에 새긴 무니로 우리가 사는 지역 사회 나아가 환경에 관심을 갖자는 취지에서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팬데믹을 맞게 된 것도 환경에 소홀한 탓이라는 자성의 의미에서다
이번에는 강좌 제목에 ‘메타버스’를 넣었다. 개강 첫날 자기소개와 함께 수강 신청 이유를 물었다. 80% 이상의 답변이 메타버스에 대해 알고 싶어서였다.
해서 “여러분은 저한테 낚이셨습니다. ㅎㅎ 저도 잘 모르지만 우리 함께 알아가 봅시다.”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답한다.
낚였다고는 하지만 내심 놀라움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매타 버스라는 용어나 개념에 관심을 쏟는 이유는 단순히 언론에 의한 영향만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비록 디지털 세대는 아니더라도 인간으로서 갖는 동물적 생존 본능이랄까?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온라인을 거쳐 우리는 점차 그 구분이 모호한 세계로 빠져들고 있다는 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의 전공은 광고와 PR이다. 요즘 같은 정보 홍수 시대에 제일 중요한 건 우선 상대방의 시선을 끄는 일이다. 카피(광고 문안)를 쓸 때도 헤드라인(제목)이 그만큼 중요하다. 세계 유수의 잡지들은 기자들이 쓴 기사의 주목률을 높이기 위해 제목만 뽑는 전문가 집단을 별도로 운영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고민과 갈등은 시작되고 마감된다. 광고는 자본주의 꽃이라는 중요성과, 사치와 과소비를 부추기는 원흉이라는 양면성 때문이다. 광고에도 비평이라는 과목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SNS가 확장되면서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눈에 띄려면 어쩔 수 없다는 자기 정당화에 직면하게 된다. 생각이 이쯤에 이르면 본격적인 자기 성찰을 마주하게 된다. 이율배반 혹은 자가당착… 요즘 유행하는 말로 바꾸면 ‘내로남불’쯤 될까?
은퇴하고 나니 예전보다 훨씬 더 생각할 시간이 많아진다. 그럴 때마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얼마나 불일치했나 하는 자성이다. 나는 내 (드러나지 않는) 생각으로 나를 평가한다. 하지만 남들은 내 (드러나는) 행동으로 나를 평가한다. 결국 타인의 나에 대한 칭찬은 내 생각과 일치했기 때문이요 언짢은 지적은 내 생각과 다르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판단 기준은 항상 나다.
강의 제목 하나를 두고도 이리 생각이 깊어지는 건 늙는 걸까? 철이 드는 걸까? 늙으면서 철드는 걸까?
철들자 망령이라는 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