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은풍월 따라 전원생활하기(1)
언젠가,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있다.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 가는 것이야말로 노년의 절박한 요구다.’
그런데 그 습관을 바꾼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열심히 일하기, 시간 약속 지키기 등등 부지런함이 바람직하다는, 습관의 뿌리는 가치관이다.
회사에 다니다가 대학으로 옮긴 후 가장 힘들었던 게 근무 습관의 변화다. 대학은 출퇴근 시간이 없다. 특별한 보직을 하지 않는 한 강의 시간에만 늦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주중에 그것도 한낮에 밖을 돌아다닌다는 게 오래도록 어색했다. 그렇다고 부지런한 습관을 억지로 바꿀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지금껏 같은 시간대에 움직인다. 문제는 일거리다. 은퇴 후에는 마감일도 없는데 항상 뭔가를 써야(해야)한다는 중압감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막스 베버의 ‘직업 소명설’쯤 되나? 놀고먹는다는 일종의 죄의식이 따라다닌다.
“생각은 언어를 언어는 행동을 행동은 습관을 습관은 성격을 성격은 운명을 결정짓는다” 영국의 소설가 찰스 리드(1814~1884)가 한 말이다.
이 나이쯤 되면 성격은 굳어질 대로 굳어졌고 따라서 운명도 대략 결정 낫지 싶다. 그래도 그 습관을 바꾸려면 행동과 언어와 생각을 거스르는 절차가 필요하다.
어제 집 앞을 지나던 이웃이 “왜 두릅 딸 때가 지났는데 그냥 놔두냐?”는 핀잔 섞인 말이 떠올라 마당으로 나선다.
행동을 바꿔볼 참이다. 아마도 저 꼭대기의 새순들이겠지... 한데 웬 가시가 이리도 많은지, 여러 차례 질렸다. 일하다 보니 곁에 대추나무에 지난가을에 열렸던 대추가 그대로 말라비틀어진 채 달려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생각난 김에 저것도 손질하자 싶어 가지를 당겨 털어 준다. 근데... 두릅 가시는 비할 바도 못된다. 오전에 글을 쓰다가 나가서 찔린 손끝이 아직도 얼얼하다. 행동을 바꾸는 대가인가 보다.
그래, 우선 가치중립적인 행동부터 바꿔 나가자. 부지런해야 한다. 뭔가 해야 한다는 (내 시대의) 성실 (가치관)과는 다소 동떨어진 바깥일에 눈을 돌려 보자. 그러다 보면 자연히 언어(용어)도 달라지지 싶다. 두릅, 대추, 복사꽃, 능소화... 평생을 입에 올려보지 않던 단어들이다. 그러다 보면 생각도 바뀌겠지.
그나저나 빈 밭에 풀은 무성 해지는 데 옥수수, 감자, 토마토, 오이는 언제, 어떻게 심는 건지..
열매를 잘라서 묻나? 씨앗을 사 와야 하나? 이웃에게 물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