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 사회 설명서
같은 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오랫동안 기획 업무에 종사해 온 만큼 나름 준비성 있고 계획적인 성격이라 자부해 왔다.
사회 진출을 앞둔 취준생이나 전업, 창업생들을 위한 또 다른 브런치(밥풀)에서도 밝혔듯이
40여 년의 사회생활 동안 모두 아홉 차례의 이직과 창업을 경험했다. 해서 나름 은퇴 이후의 생활에 대해서도 자신했었다.
하지만 틀렸다.
첫째, 이직은 직에서 직으로의 전환이다. 그러나 은퇴는 직에서 무직으로 바뀐다. 처음 겪는 일이다
둘째, 새롭게 도전할 나이가 아니다. 마음이야 아직 입사 초기의 청춘이다. 하지만 마음일 뿐이고 욕심이다
셋째, 세상이 바뀌었다. 4차 산업 혁명 이후 가속화는 코로나로 인해 그 정점을 찍는다. 누군가는 코로나의 2년이 20년을 앞당겨 놓았다고 한다. 동의한다
넷째, 초고령 사회로의 진입이다. 현재의 고령사회는 앞으로 3년 뒤 2025년이면 65세 인구가 20%를 넘어서는 초고령 사회다. 난 그 선두에 선 베이비 부머다.
새로운 도전이나 이직을 꿈꾸는 후배나 제자들에게 인생은 징검다리를 건너는 것과 같다. 앞에 놓인 돌이 디딜만한지 확인한 후에 뒷다리를 들어라는 식으로 조언하곤 했다. 그리고 본인 스스로에게도 이런 원칙을 엄격하게 지키며 살아왔다.
그러나 은퇴는 다르다. 앞에 디딜 돌이 더 이상 보이질 않는다. 초유의 고령사회를 헤쳐가는 만큼 참고가 될만한 선배들의 경험담도 전무하다.
제일 당혹스러운 건 40여 년동안 몸에 밴 습관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전투) 복장을 갖추고 어디론가 나서야 하는데 갈 곳이 없다. 해서 꾀를 낸 것이 9시면 2층 서재로 출근하는 식이다. 거기서 점심때까지 책 읽고 글 쓰거나 인터넷을 뒤지고 오후에 할 텃밭 농사에 관한 공부를 하며 지낸다. 이렇게 서서히 출근 습관을 지워나가야 할 것 같다.
다른 은퇴자들은 어떻게 지낼까? 은퇴 전 하던 일이나 경제적 상황 등에 따라 서로 다르겠지만 그래도 공통점은 있지 싶다. 해서 얼마 전 교수를 마지막으로 정년퇴직한 고교 동창 몇 명에게 대화의 자리를 갖자고 제안한다. 이름하여 ‘隱敎의 私生活’, 다분히 자극적이다. 응당 박범신의 동명 소설에서 차용했기 때문이다. 단지 은퇴한 교수를 그리 개명했을 뿐인데 다들 야릇한 반응이다. 오해 마시라, 공사를 불문하고 대학에서의 생활이 공생활이었다면 은퇴 후의 그것은 사생활이 아니겠는가라고 부연 설명을 덧붙인다. 여전히 선생으로서의 자세는 견지하겠지만 좀 더 전공에서 자유롭고 교단의 권위를 털어버린 고백을 기대한다.
대학 선생이라는 특정 직업군에 속하지만, 우리 모두 낯선 고령사회를 살아갈 첨병들이다.
마치 밤새 눈 내린 길을 새벽에 처음 걸으며 발자국을 내는 사람들처럼 우리의 행적은 뒤따라 오는 후배들에게 옳든 그르든 고령사회를 살아가는 좌표가 되리라 마치 서산대사의 詩처럼..
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 눈 내린 들판을 걸어갈 때
不須胡亂行 (불수호란행) 함부로 어지러이 발걸음 내딛지 말라
今日我行跡 (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은
遂作後人程 (수작후인정) 뒤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되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