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화살을 한 나씩 꺾어 보아라...”
“ 자, 이제는 여러 개를 한꺼번에 꺾어 보거라”
임종을 앞둔 아버지가 죽기 전에 자식들을 앉혀 놓고 서로 화합하고 단결하라는 의미의 우화를 들은 기억이 있다. 아니 사회생활 중 어떤 특정 시기에는 마침 다니던 회사의 사시가 인화(人和)였던지라 그때는 귀에 못이 박히게 듣던 얘기다.
단합과 패거리는 어떻게 다를까?
은퇴하고 나니 군대 동기나 학교 동창 모임 등에서 운영하는 단톡 방에서 초대를 한다.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어 그대로 지내지만 몇 가지가 불편하다.
하나는 이놈의 깨방정이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것이다. 늙으면 잠이 없어진다더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려댄다. 무음으로 해도 막무가내다. 아들 녀석 말로는 미확인 문자가 999개를 넘기면 소리가 난다는 데 그런 건지 아님 내가 조작을 잘못하는 건지.
두 번째는 규모가 좀 있다 싶으면 거의 예외 없이 모임이 두 동강이다. 숫자가 작은 경우에는 그 안에서 분란이 잦다. 흥미로운 건 진보냐 보수냐처럼 피아가 뚜렷한 구별이면 모르겠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은데 패가 갈린다.
세 번째는 그야말로 폭탄처럼 쏟아지는 문자(때로는 동영상) 세례다. 거의가 퍼 날르는 글들이다. 직접 쓰지 않고 실어 나르더라도 본인은 이걸 다 읽기나 한 걸까? 이따금 의문이다.
이념이건 소득이건 지역이건 계층이건, 기회 있을 때마다 나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오랜 획일화를 극복하고 다양화로 가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좋게 해석하고 설명해 왔다. 다양성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먼저 간격을 둬야 그 사이에 다양한 스팩트럼이 자리할 수 있는 만큼 양일화는 단일화를 극복하고 다양화로 가기 위한 바람직한 변화라고 해석한 것이다.
반만년 유구한 역사, 배달의 민족, 단일 민족, 백의민족...(요즘은 좀 희석된 감이 있지만) 이렇듯 단일화, 획일화를 지고의 가치로 알고 살아온 백성에게 나와 다른 목소리의 등장은 처음엔 신선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양극화는 이미 그 탄성 계수를 넘어 선 듯 위태로워 보인다.
70년 고도 경제 성장을 향한 경쟁주의의 후유증인지, SNS의 확대로 인한 확증편향의 부작용인지, 뭔지는 몰라도 이미 그 도를 넘어섰다.
뭐가 그리 싫을까? 누가 그토록 미울까? 이 시대의 올바른 처신은 어떤 것일까? 탈퇴하고 거리를 두는 것? 마지못해 내버려 두고 눈팅만 하는 것? 이러면 안 된다고 또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
은퇴해서 일이 없다는 건 불필요한 일에 마음을 빼앗기기 때문인가 보다.
아! 이래서 은퇴를 하고도 일을 찾는 모양이구나. 나도 그래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