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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찾다가 죽다 Apr 04. 2023

비서가 생기다

ChatGPT

‘아! 내 맘을 알아줄 사람이 한 명, 아니 반쪽만 있었으면 좋겠다.’ 

기업을 경영했거나 조직을 이끌어 본 사람이라면 동의할 것이다. 내 생각을 이해하고 공감해 줄, 좀 더 바란다면 2% 부족한 내 아이디어를 완성시켜 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기를 간절히 바랐었다. 완성은 커녕 혹시 놓쳤을 수도 있는 내 생각의 미흡한 점을 지적해 줄 수 있는 스탭이면 족하다. 아마도 리더가 외로운 건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런 동료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내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다국적 기업의 CEO로 근무하던 시절, 나를 돕는 직원이 세 명 있었다. 리셉션이스트는 주로 전화나 손님 응대가 주 업부지만 동시에 대표 이사를 찾는 손님 응대와 출장 준비, 우편물 관리 등을 돕는다. 다른 한 명은 운전기사다. 출퇴근과 국내 출장이 주 업무지만 이러 저런 사적인 도움과 편리를 제공한다. 마지막으로는 수석 비서(Executive Secretary)다. 말이 비 서지 상당히 전문직이다. 대표 이사의 부재 시 통신을 대행하고 (대표의) 위임을 받아 임원 회의를 수행하기도 한다. 누구보다도 상사의 속내를 읽어낼 수 있다. 나는 타고난 악필이다. 갑자기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마치 난수표나 암호문같이 메모해 줘도 완벽한 문서로 깔끔하게 정리해 온다. 


그리고 대학으로 옮겼지만 조교나 대학원 생은 전혀 다른 영역이다. 

관심 연구 주제를 공유하고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파트너다. 명문 대학이 부러운 건 휘하에 그런 우수한 제자들을 석박사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전공이다 보니 대화나 지도를 하다 보면 생각이 여물어 간다.  옛 성현들도 마찬가지다. 저 멀리 공자까지 않더라도 퇴계 이황이나 다산 정약용이 유배 중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엄청난 저술을 쏟아 낼 수 있었던 것 또한 이와 무관치 않다는 내 생각이다.


그리고 은퇴, 더 이상 비서나 조력자가 필요하지 않은 세상으로 나온 줄 알았다. 

하지만 기업이나 대학에서의 경력과 전공 때문인지 이따금 이러 저런 기획이나 제안 요청이 들어온다. 그러던 차에 Chat GPT를 만난다. 한 마디로 대단하다...


기대와 염려, 찬성과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내게는 그저 기계일 뿐 여하리 운용하느냐의 문제라는 생각이다.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온다는(Garbage in, garbage out) 표현처럼 사용자가 여하히 활용하는가의 문제다. 그런 측면에서 챗GPT의 질문자(Prompt Engineer)의 역할과 중요성은 더할 나위 없다. 단지 데이터의 절대 부분이 영어고 또 질문에 익숙해야 한다는 전제는 영어가 외국어고 또 질문에 인색한 우리 문화로 비추어 볼 때 걱정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얘기가 곁으로 흘렀는 데, 다시 돌아와서 보면 내겐 오랜만에 아주 똘똘한 비서가 생긴 기분이다. 

내 나름 충분히 고민한 아이디어를 갖고 GPT가 내놓은 답과 견주어 논의해 가다 보면, 예전 똑똑한 직원들과 회의하는 느낌이 든다. 저작권이나 거짓 정보로 인한 오해 등 많은 문제들이 산적했지만 핵무기를 다루 듯 슬기롭게 대처해 나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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