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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찾다가 죽다 Jul 04. 2023

부자유친은 멸종인가?

노년의 대화


“난 아예 이제부턴 오지 마라 했어요.” 일흔 된 여성의 목소리다

“굽은 소나무가 조상 묘를 지킨다는 옛 말 틀린 거 하나 없어요.” 

자식 손주 며느리가 외국서 생활한다는 동년배의 푸념이다.

“우리 애는 코빼기도 안 보이고 아예 연락을 안 받아요.” 몇 해 전 사별했다는 동네 이웃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우리 집 마당에 모여 태극권을 하기 전 차를 마시며 오늘 아침 나눈 대화다.

다른 일로 참석 못했지만, 며느리 부재중에 먹을거리를 전해주려고 들렸다가 비밀 번호를 알려주지 않아 되돌아왔다는 아주머니도 우리 모임이다.

어찌 내 주변에만 불행한 사람이 모인 걸까?


“운동이나 합시다”

맨 발에 잔디밭에서 어설픈 동작을 몇 차례 따라 하다가 아침을 파는 식당으로 장소를 옮긴다.

다시 주제가 자식 문제로 돌아간다.

“대부분 자녀들에 대한 문제나 불만을 토로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마치 나는, 부모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소리로 듣기는 데 과연 그럴까요?” 몇 번을 망설이다가 내가 입을 연다.

이 자리에 없는 자식 넘을 아무리 욕하고 비난해 봐야 들리 지도 않고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질 않는다. 그러니 우리 함 자리를 만들어서 왜 그런지, 혹 내겐 문제가 없는지 서로 돌아가며 이야기하는 자리를 만들어 보자는 제안에 다들 그러자고 동의한다. 

하지만 건성으로 들린다. 그만큼 골이 깊어진 것이다. 


다들 돌아간 뒤에 책을 읽다가 문득 아침의 대화가 떠오른다. 아마도 읽고 있는 책(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김영민 논어 에세이)때문이지 싶다.

논어…

그야말로 수박 겉 할기지만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을 남들만큼은 읽은 셈이다. 해서 기억나는 대목, ‘군신유의, 부자유친…’군과 신을 구분하는 왕조 시대의 지배구조에 반발해 멀리했던 대목…

군신이 유의하지 않아 부자가 유친하지 못한 건가? 부부가 유별치 못한 것도 장유에 유별이 사라진 것도 붕우가 유신하지 않은 까닭도… 도대체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글을 쓰느라 열어 놓은 화면에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라는 긴 이름 단체의 대표 인터뷰가 기사로 뜬다. ‘윤리와 도덕이 붕괴했다. 특권층은 잘못해도 처벌받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출세한다. 초중고교에서 인성교육을 하는 데, 효과가 있을 리 없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 도덕적으로 타락한 사람들, 전과가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계속 출세하는 데, 어떻게 인성교육이 되겠는가….’


그래 우린 이런 세대를 살아왔다. 

그러는 동안 나 역시 사회는 경쟁이라면서 알게 모르게 이런 부도덕과 불법에 동조하지 않았는가? 그런 부모의 훈계가 얼마나 공허했을까…

그래 어쩌면 엇박자가 더 맞을지도 모르겠구나. ‘대~ 한민국 짜자잔 짝짝’처럼…


북구 유럽 같은 선진국을 봐라. 우리도 국민 소득이 6만 불, 8만 불 되면 양보와 배려, 공감과 나눔의 세상을 다시 누릴 수 있다. 두레나 품앗이를 기억하는 우리 세대(베이비 부머)가 고령화에 선두에 선 까닭은 그 정신이 멸종되기 전에 이를 후대에게 알리라는 사명이라 우겨댔다. 그것이 우리(부터)를 장수시키는 이유라고 믿었다. 해서 선배시민운동에 관심 갖고 동년배 이웃들을 모아 채 읽기도 쓰레기 줍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 아침 대화는 이 모든 걸 부질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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