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의 병인가?
대학 제자 가운데 한 명이 의료 기기를 가지고 전 세계 박람회를 누비고 다닌다.
이따금 페북에 올리는 글을 보면 이런저런 상도 받고 이곳저곳에서 상담과 수출 실적을 올리는 등 그 활약상이 대단하다.
“선배 기업가님들도 다들 이렇게 수출을 일궈내셨겠죠? 좋은 성과 안고 안전하게 귀국하겠습니다.”
오늘 새벽 읽은 그의 글을 보고 처음으로 댓글을 달았다.
“그랬었지, 때로 외롭고 고단함 속에 밀려오는 보람, 긍지, 솟구치는 사명감 그 모두를 느껴보게, 아니 맘껏 누리게나. 나이 들어 당당할 수 있도록… -교수이기에 앞서 종합 무역 상사의 선배가 -”
내 딴엔 일종의 격려였다.
내가 그랬으니까. 야간 비행으로 일정을 아껴가며 동분서주하던… 그러다가 지친 몸으로 호텔을 향하던 순간 문득 드는 생각, 느낌, 기억들이었으니까…
아침 식사를 마치고 산책길에 유튜브를 듣는다. 라테를 외치며 놀 줄 모르는 꼰대 세대를 향한 지적이다. 놀면 죄의식을 느끼는 세대란다… 이제는 바야흐로 창조 경제 시대고 잘 놀 줄 알아야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맞는 말이다.
은퇴한 지 3년이 가까워 오지만 여전히 불편하다.
수십 년을 출퇴근해 온 관성이 멈춰 서겠거니 했는 데, 그 속내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그저 논다는 죄책감이 묻혀있었는가 보다.
늘 상 뭐라도 손에 쥐고 읽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 쓰거나 그도 아니면 밭에 나가 풀이라도 뽑아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학 졸업 후 41년의 직장 생활, 다시 말해서 경제 활동을 해 왔다. 사오정이니 오륙도니 하는 세상에 이 정도면 나름의 몫이나 역할을 하지 않았는가? 이젠 연금에 기대어 아무것도 안 하고 쉬어도 괜찮지 싶다.
헌데 불편하다.
지난 3년을 마냥 무위도식하지는 않았다. 동네 사람들을 모아 매달 독서 토론회도 하고, 태극권도 가르치고 이따금씩 예전 학회 모임에도 얼굴을 내밀어 왔다.
그런데도 마냥 놀기만 하고 있다는 부담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오래된 습관의 후유증일까?
아날로그 세대의 관성일까?
그냥 꼰대이기 때문일까?
제자에게 남긴 격려의 메시지를 지워야 하는 걸까?
나만 이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