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찾다가 죽다 Sep 25. 2023

습관의 비 가역성

시니어 해부학 13

해운대 파라다이스 호텔이 마주 보이는 오래된 온천장에 여장을 푼다.

온천을 즐긴다는 개인적 기호도 있지만 기실, 같은 출장이라도 은퇴 후는 급이 다르다. 아니 알아서 다르게 처신해야 한다. 손바닥만 한 벤처 기업을 자문하는 입장에서 다국적 기업의 CEO 경비를 물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전 6시, 처서가 지나 추분이 코앞인데도 아직 밖은 훤하다. 근처 복국집은 여덟 시나 돼야 아침 식사가 가능하니 방 안에서 뒹군다. 예나 지금이나 호텔 방의 조명은 책 읽기엔 너무 어둡다. 

못 참고 길을 나선다. 

아직 출근하는 인파도 드문 시간이다. 생각은 예전 젊어서의 출장 기억으로 향한다. 홍콩도 도쿄도 뉴욕도 이 맘 때쯤이면 한 손엔 종이컵을 든 종종걸음의 젊은이들로 즐비하다.


새벽이면 눈이 떠지는 버릇은 오래된 습관이다. 

아마도 군대 훈련 시절에 비롯됐지 싶다. 장교인지라 5개월의 훈련 기간 내내 새벽에 기상하고 요즘 같으면 초 저녁 시간에 잠자리에 든다. 제대 후 출근하느라 일찍 일어나다 보니 어느새 몸에 밴듯하다.

해서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도 제일 먼저 연구실에 나와 앉는다. 드넓은 학교 캠퍼스를 한 바퀴 돌아도 아직 1교시 등교 학생들이 보이지 않을 시간이다. 그러다 은퇴를 맞이했다.

그야말로 가진 게 시간이요 남는 게 시간인 생활이다. 늦게 일어나야 하루가 짧다. 하나 그게 쉽지 않다. 평소에 나쁜 습관은 고치기 어려워도 좋은 습관은 쉽게 바꿀 수 있을 줄 알았다. 이를테면 게으른 사람이 부지런해지기는 힘들어도 부지런한 사람이 게을러지는 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틀린 생각이다. 모든 습관은 비 가역적이다.


비단 습관뿐만이 아니다. 사고도 마찬가지다. 이제 곧 추석 명절이다. 정부나 기업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연휴 늘리기에 들어간다. 연가를 줄이고 소비를 진작시키려는 노력이다. 아니 보다 근본적으로는 기계와 로봇에 의한 생산성이 잉여 노동을 창출한 것이다.

이제 머잖아 주 4일제가 현실이 될 판이다. 논란 중이지만 기본 소득제도 확산될 것이고 긱경제나 N잡러는 더더욱 일반화될 판이다. 이 모든 변화들이 머리로는 이해되는 데 몸과 생각이 따라주질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군사 정권 시절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조심하던 자율 규제만큼이나 주중에 쉬는 데 대한, 부지런하지 못한 데 대한 죄의식(?)이 남아 있다. 젊은이 들은 말도 안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난 그렇다. 해서 입으로는 게을러야 한다지만 습관은 전혀 그럴 맘이 없는 듯하다.


방법은 하나다. 생산성의 목표나 대상을 바꾸는 일이다. 산업 생산성에서 여가 생산성으로, 재화 생산성에서 건강이나 행복 생산성으로… 하지만 그 조차도 쉬운 일이 아니다. 평생을 바삐 살면서 봉사는 나중에 은퇴 후에 하겠다고 핑계했지만 정작 은퇴하고 나니 어찌 봉사해야 할지 모르는 난감한 심정과도 같다.


좋든 싫든 모든 습관은 바꾸기 힘들다

작가의 이전글 어쩌다 은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